19개월 법정투쟁 승리 … 다시 군복 입는 피우진 중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23일 현역 군인으로 복귀한 피우진 중령이 국방부 기자실에서 소감을 밝히며 웃고 있다. [사진=김민석 기자]

“군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게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1년7개월에 걸친 투쟁의 끝은 승리였다. 유방암 절제 수술을 받은 병력 때문에 2급장애 판정을 받아 강제 퇴역했던 피우진(52·여·사진) 중령이 23일 현역 군인으로 복귀했다.

국방부는 ‘피씨의 퇴역처분을 취소하라’는 서울고법의 판결과 관련해 상고를 포기하고 피 중령의 복직을 허용했다. 피 중령은 국방부의 복직명령에 따라 이 날짜로 현역 군인의 신분을 회복했다. 2006년 11월 퇴역처분을 받은 지 1년7개월 만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피우진 예비역 중령에 대해 항소심 법원의 판결을 수용, 상고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대승적 차원에서 복직을 허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육군본부에서 심의를 거쳐 다음주 보직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군 복무 중 발생한 심신장애 군인과, 국가를 위해 희생한 장병에 대해선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방부의 정책기조를 구현하고 1심과 2심의 재판 결과를 존중한다는 취지에서 복직을 허용했다”고 설명했다.

1978년 소위로 임관한 피 중령은 81년 헬기 조종사가 됐다. 그러나 2002년 유방암에 걸려 양쪽 가슴을 도려내는 어려움을 겪었다. 피 중령은 병마를 이겨냈지만 2005년 군의 정례 신체검사에서 2급장애 판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육군본부는 2006년 11월 피 중령에 대한 전역심사위원회를 열고 퇴역처분을 내렸다.

피 중령은 건강이 회복됐는데 퇴역처분을 받는 것은 억울하다며 국방부에 민원을 냈다. 민원이 기각되자 그는 포기하지 않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피 중령의 억울함은 지난해 10월 반전되기 시작했다.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한 퇴역처분 취소소송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곧바로 서울고법에 항소를 제기했지만 판결은 뒤바뀌지 않았다. 피 중령에 대한 육군본부의 퇴역처분을 취소하고 현역에 복귀시키라는 것이었다.

서울고법 행정4부(부장판사 정장오)는 지난 6일 퇴역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피씨가 유방암 진단을 받아 유방절제술을 받았으나 수술 경과가 양호하고 향후 완치 가능성이 90% 이상인 점, 피씨가 수술 후 정기 체력검정에서 모두 합격 판정을 받았고, 수술로 인해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해 보면 피씨가 현역으로 복무하는 데 장애 사유가 없다”고 판결했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국방부는 여론을 의식해 지난해 8월 심신장애등급을 받은 군인이라도 심사를 거쳐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군 인사법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피 중령은 복직 투쟁을 하는 동안 진보 정치인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18대 총선을 앞두고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후보 3번으로 내정됐다. 하지만 복직이 결정된 이상 정당활동은 그만두기로 했다. 현역 군인은 규정상 정당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헬기를)타고 싶다. 퇴역처분이 취소됐으니 원래 상태(헬기 조종사)로 돌아가야 하는 게 당연하다. 국방부에서 인권활동도 하고 싶다.”

-건강 상태는.

“좋다. 저희(군인)는 어려울수록 힘이 나는 사람이다. 현역 때도 수술받은 뒤 헬기를 조종했다.”

- 현역 복귀를 허용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시대에 맞게 사고가 전환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제2, 제3의 피우진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 ”

-군에 대해 섭섭한 감정은.

“섭섭하다고 얘기한 적은 없다. 군은 가치가 변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다만 절차상에서 섭섭한 점은 있었다. 현재의 건강 상태를 보지 않고 과거 병력을 가지고 근무를 평가하거나 하는 것은 잘못됐다.”

-군에서 포기하란 압력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오히려 군으로부터의 단절이 제일 큰 고통이었다. 저 때문에 후배나 주변 사람이 불이익을 받을까봐 아예 전화도 받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았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