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모두 제 탓” 세 차례 숙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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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2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쇠고기 파문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기에 앞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사진=김경빈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는 쇠고기 파문과 관련, “정부가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문 낭독을 마친 뒤 머리를 두 차례 더 깊이 숙였다. 담화 시작 때의 인사를 제외해도 모두 세 차례 고개를 숙인 셈이다. 8분간의 담화문을 읽는 동안 숙연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대통령 취임 88일 만이다.

사과의 수위는 예상보다 높았다. 이 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소홀했다”며 “국정 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저의 탓”이라고 밝혔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사과, 유감 등 표현 수위를 놓고 고민했다”며 “국민의 비판과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에서 ‘송구’란 단어를 택했다”고 전했다. 한때 ‘참으로 송구스럽다’ ‘송구스럽기 그지없다’는 표현까지 검토됐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통해 쇠고기 파문에서 벗어나길 원하고 있다. 더 나아가 조각 과정에서의 ‘강부자’(강남 땅 부자) 비판과 각료 내정자의 잇따른 불명예 낙마, 당·정·청 엇박자 등의 불협화음도 한꺼번에 털어내려 하고 있다. 그의 국정지지도는 현재 20%대다. 역대 대통령 취임 초 지지도에 비해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여야를 떠나 민생과 국익을 위해 용단을 내려달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조기 비준을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대국민 사과는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가 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요구했었다. 이 대통령이 수용하는 형식을 거친 만큼 손 대표와 야당이 더 이상 한·미 FTA 처리에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고 압박한 셈이다.

이 대통령 의도대로 정국이 풀려갈지는 미지수다. 야권은 쇠고기 재협상과 관련자 인적 쇄신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 관심은 FTA 비준보다 대국민 사과에 모아지는 양상이다. 가시적 조치가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일단 소통의 행보를 늘린다는 생각이다. 취임 100일(6월 3일)을 전후해 부분적으로 국정을 쇄신하고 국민과의 대화에 나설 계획이다. “국정 쇄신에 인적 교체는 포함되지 않는다”(이 대변인)고 한다. 이 대통령은 이날 “모두 저의 탓”이라고 못 박았다.

당장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본질적 해답을 전혀 제시하지 않은 담화”라며 “대국민 사과에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차갑게 반응했다. 이 대통령이 담화문을 발표한 뒤 임채정 국회의장을 찾아 한·미 FTA 직권상정을 요청하려던 계획은 무산됐다. 상황 변화를 기대하기 힘든 때문이었다. 꼬인 정국을 돌파하고 국정을 주도하기 위해 이 대통령은 또 다른 카드를 꺼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글=최상연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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