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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사르코지 그리고 MB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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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취임 1주년을 맞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지지도는 여전히 바닥이다.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실패한 대통령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욕은 실컷 먹었지만 일은 참 많이 했다. 이번 주 초 나온 사법개혁 보고서를 보면 입이 벌어질 정도다.

그가 지난 대선 당시 제시한 16개 항목의 사법개혁 가운데 상당수가 마무리됐거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역대 정권이 법조계의 반대에 부닥쳐 하지 못했던 일을 1년 만에 해 냈다. 사르코지 본인이 변호사 출신이어서 더욱 평가받을 만하다. 우선 법원 개혁이다. 1200여 개의 법원을 862개로 줄이는 방안을 논란 끝에 확정했다. 나폴레옹 때부터의 법원 관할지가 처음 바뀐 것이다. 밥그릇이 줄게 된 지역 변호사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근무지를 바꿔야 하는 판·검사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하루에 2~3건 처리하는 작은 법원을 줄이는 대신 그 돈으로 사법 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설득이 집단이기주의를 꺾었다. 사르코지는 지난해 경제인 모임에선 “걱정 없이 기업 경영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세제 혜택과 함께 기업인 사법처리 완화도 약속했다. 시민단체와 노조가 ‘재벌 정부’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사실상 공소시효가 없던 배임죄의 시효를 합리화했다. 기업인들을 죄인으로 몰기 좋았던 사문화된 기업처벌 조항도 여럿 폐지했다. 합리적인 친기업 정책의 결과는 현장에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기업 투자가 지난해 4분기에는 1.4% 늘더니 올 1분기에는 다시 1.8% 증가했다.

그런 걸 보면 인기 추락으로 고심하는 이명박 정부도 아직 실망할 일은 아닌 듯하다. 다만 사르코지와 이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에 큰 차이가 있다는 건 알아야 한다. 사르코지의 전방위적인 사회개혁에 대한 저항이 그의 인기를 빼앗아 갔다. 물론 그의 사생활도 일부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을 궁지에 내몬 건 인사 실패와 정책 혼선이었다. 이 때문에 취임 전 거창하던 약속들은 아직 이행 채비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떳떳지 못하면 여기저기 눈치 보느라 개혁은 물 건너간다. 반면 일 많이 한 정부는 나중에라도 박수받는다.

전진배 파리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