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씨 부정축재 사건-특별조사실 주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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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헌정사에 또하나의 비극적 사건으로 기록될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부정축재 혐의 조사는 2일새벽까지 16시간20분을 넘기는마라톤 신문으로 이어졌으나 盧씨의 답변회피로 미진한채 끝났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서울서초동 대검청사는 하루종일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으며 김기수(金起秀)검찰총장등 간부들이 자정넘어까지 지켜보며 진두 지휘하는등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전10시부터 11층 특별조사실에서 벌어진 수사에서 盧씨는 돈을 받은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건넨 기업인과 개인축재.해외재산도피설에 대해선 끝까지 부인,검찰의 애를 태웠다.
盧씨 수사검사인 문영호(文永晧)부장검사는 신문하는 동안 「노대통령」으로 일관되게 호칭했고 盧씨도 비교적 침착하게 조사에 응했으나 자주 『기억이 안난다』『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다』며 진술을 회피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이때문에 1일 밤 안으로 끝날 것으로 예상되던 조사가 자정을 넘겼다.
盧씨는 文부장검사와 책상을 사이에 두고 철제의자에 마주 앉았다. …오전9시45분쯤 서초동 대검청사에 도착한 盧씨는 윤주천(尹柱天) 대검 사무국장과 민병인(閔丙仁)총무과장의 안내를 받으며 검사장급 이상만 이용하는 귀빈용 승강기를 타고 7층 안강민(安剛民)중수부장실로 직 행.짙은 감색 싱글양복차림 의 盧씨는 기자단의 질문공세에 작은 목소리로 『국민들한테 죄송합니다』라고만 답변.
盧씨는 安중수부장실로 올라가 9시47분부터 10여분간 대추차를 마시며 安부장과 담소했는데 차를 한모금만 들고 나머지는 남겼다. 盧씨는 10시정각 김유후(金有厚)변호사의 안내로 11층특별조사실로 향했고 安부장은 부속실까지만 나와 인사.
盧씨 신문에 참석한 검찰측 관계자는 문영호 중수 2과장,김진태(金鎭太)대검연구관,입회계장등 모두 3명.주임검사인 文과장이질문을 담당하고 金연구관은 옆방에 대기하면서 질문자료를 준비.
입회계장은 문답 내용을 그때그때 컴퓨터에 입력하 는 역할을 맡았다. 한 수사관계자는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나라 전체를생각해야 함에도 돈준 사람만 보호하려고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며 『일반 범죄인과 다를바 없어 실망했다』고 씁쓸해 했다.
…盧씨는 낮12시부터 1시간동안 연희동에서 준비해온 일식 도시락으로 점심을 대신했으나 소환조사에 부담을 느낀탓인지 절반이나 남겼다.
또 저녁은 청사 주변에서 배달해온 꼬리곰탕을 권했으나 『목이아프다』는 이유로 거절,연희동에서 가져온 죽으로 대신했다.
검찰수뇌부는 당초 11층 특수조사실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통해 조사모습을 살펴볼 예정이었으나 수사검사에게 부담을줄것을 우려,가동하지 않았다는 후문.
…2일 오전2시20분쯤 검찰출두 16시간 35분만에 조사를 마치고 검찰청사를 나선 盧씨는 혼자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매우 피곤한 기색.
盧씨는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 가슴이 답답한듯 가슴부분에 손을 얹은 채 『정말 미안합니다.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습니다.
다시한번 국민들에게 죄송한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고 들릴듯 말듯한 작은 목소리로 답변했다.
盧씨는 만감이 교차하는듯 머뭇거리다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쓰러지려해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승차,차 뒷좌석 왼편에 타고있던 최석립(崔石立)전경호실장의 무릎에 몸을 뉘었다.盧씨는 崔실장이 두차례나 몸을 바로 세우려 노력했으나 여 의치 않아 崔씨의 무릎에 머리를 기댄 채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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