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기름진 러시아가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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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B(브라질)’에 집중됐던 세계 투자자들의 눈이 이번엔 ‘R(러시아)’로 쏠리고 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에 바짝 다가서면서 러시아 증시가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러시아 RTS지수는 이달 들어서만 15% 넘게 뛰었다. 국내 러시아 펀드 투자자들도 신이 났다. 18개 펀드의 한 달 평균 수익률이 14.91%에 달한다. 브라질 펀드(16.96%)에 이어 2등이다.

◇에너지가 힘=러시아는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2위의 산유국이다. 천연가스는 부동의 1위다. 러시아 증시는 에너지 관련 기업이 시가총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 최대 산유지역인 중동의 에너지 회사가 대부분 비상장인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러시아의 전체 수출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30%가 넘는다. 기름 값이 오르면 세계 자본이 앞다퉈 모스크바로 몰려드는 이유다.

러시아는 전체 수출액의 절반 이상을 유럽연합(EU)에 판다. 대미 수출 비중은 고작 2.5%다. 미국 경제가 금융위기로 둔화하고 있는 영향을 덜 받는다는 얘기다. EU 국가들은 지난 몇 년간 높은 성장률을 보였고, 경기 둔화 움직임도 미국보다 완만한 편이다.

세계적 투자은행(IB)인 골드먼삭스가 앞으로 6개월~2년 사이에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2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낸 것도 세계 자본의 러시아행을 부추겼다.

골드먼삭스는 향후 1년간 러시아 증시가 20%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함께 내놨다. 러시아 정부가 에너지 관련 기업들에 대한 감세정책을 계획하고 있는 것도 투자자들에게는 호재다. 삼성증권 김휘곤 연구위원은 “기름 값 상승으로 인한 국부 유출을 되찾는 방법 중 하나는 러시아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가 복병=대통령 퇴임 하루 만에 실세 총리로 돌아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8일 취임 일성으로 “물가상승률을 한 자릿수로 끌어내리겠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한 해 전에 비해 14.2% 올랐다. 특히 음식료는 20% 넘게 올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의 올해 물가상승률이 11.4%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러시아보다 경제 성장 속도가 빠른 중국·인도에 비해서도 높다.

에너지 산업 투자 비중이 지나치게 큰 것도 장기적으로는 부담이다. 러시아의 외국인 직접투자 가운데 제조업 비중은 20%인 반면 광물 채취 관련 산업은 그 두 배인 41%다.

러시아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고성장을 계속하려면 제조업·건설 등으로 투자를 넓혀야 한다는 얘기다.

신영증권 김효진 연구원은 “러시아가 ‘네덜란드병’에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병이란 과거 북해 유전을 개발한 뒤 들어온 막대한 ‘오일 머니’로 경제가 성장한 네덜란드가 경상수지 흑자 누적→환율 절상→수입 증가→국내산업 경쟁력 악화의 길을 걸었던 것을 말한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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