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재정위기-올해들어 11억달러 적자 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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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오늘의 유엔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고민은 「돈」 문제다.
재정위기에 빠진 유엔을 구출해 내기 위해 묘안이 백출하고 있다.국제외환거래에 부과금을 매겨 유엔 재원으로 충당하자는 안을 비롯해 국제여행에 인지세를 부과하자는 안,국제우편 과 통화에서일정액을 뜯어내자는 안 등 별의별 아이디어가 유엔주변에서 속출하고 있다.그러나 모두가 현실성이 미약한 것들이다.유엔 재정형편이 얼마나 다급한지를 상징적으로 말해 줄 뿐이다.
재정위기의 원인은 간단하다.갈수록 유엔의 씀씀이는 커지는데 회원국들의 분담금납부는 만성적인 체납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까닭이다. 씀씀이의 확대요인은 두 가지다.첫째는 평화유지군 비용이다.90년 4억달러에 불과하던 것이 지금은 30억달러가 넘는다.급한대로 빚으로 메운 금액이 많아 금년말로 11억달러 상당이적자다. 둘째는 개발사업분야다.탈(脫)냉전을 계기로 이 분야 사업이 급신장하고 있다.92년 유엔이 채택한 「21세기 의제」를 추진하기 위한 지구환경보호사업 소요경비만도 6,000억달러.뜻깊은 사업이라면서 모두들 쌍수를 들고 환영했으나 막상 재원조달문제에는 아무 합의가 없다.공중에 붕 뜬 상태다.
인구활동기구(FPA)의 연간예산은 4억달러.유엔의 사업계획에따르면 지금도 100억달러가 필요하고 2,000년에 가서는 170억달러를 쓴다고 되어 있다.난민사태가 벌어지면 제일 먼저 식량을 들고 뛰어 가는 세계식량계획(WFP)의 예산은 15억달러.현재 26개국에 3,000만명의 난민이 깔려 있는 판이니 코끼리비스킷 격이다.
돈이 뒷받침되지 않는 유엔의 개발사업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못사는 나라를 돕자는 뜻은 좋으나 결과적으로 유엔의 공신력실추만 자초할 뿐이다.여유있는 나라들이 돈을 더 내는 방법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데 그게 쉽지 않다.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과달라 유엔의 개발사업은 빌려주는 게 아니라 공짜로 원조해 주는것이라 더 어렵다.유엔전체의 개발예산이 40억달러에 불과하다.
각국의 자발적 기여금으로 충당하는 예산이다.
그러나 유엔에 분담금을 완납한 국가는 185개 회원국 가운데한국 등 64개국에 불과해 재정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특히미국은 유엔평화유지활동(PKO)분담금 미납액을 포함해 모두 12억5,000만달러를 내지 않아 체납액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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