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첩보전>下.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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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서울은 안전한가.경제첩보전 얘기를 하면서 던지는 이같은 질문에 웬만큼 사정을 아는 관계자들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미국 CIA는 지난 91년 「 국가정보지원팀(NIST)」이라는 조직을 새로 설립,각국에 요원을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한국에도 작년부터 CIA.국방정보국(DIA).국가안보국(NSC)등 정예 정보기관에서 차출된 약 50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이 팀이 상주하는 것으로 전해진다.대북한 첩보활동 강화를 표면적인이유로 내건 만큼 정치.군사정보의 수집.분석이 주업무지만 경제및 산업정보수집에도 나서는 것으로 추측된다.
민관 협조체제도 잘 갖춰져 있다.미대사관과 주한 미상공회의소(AMCHAM)는 한국에 진출한 미국기업들과 손발을 맞춰 각종정보를 생산해 낸다.재정경제원의 한 간부는 『미 상의내 분야별로 구성돼 있는 위원회는 조찬등의 자리에 국내 주요 인사를 불러내 정보를 확인.수집하기도 하며 여러 채널을 통해 취합한 것을 본국 정부및 의회에 정기적으로 보고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일본도 대사관을 구심점으로 무역상사등과 협력,각종 첩보를 수집하고 다시 본국 해상보안청등과 정보를 주고 받는 것으로 돼 있다.93년 가을에는 심지어 후지TV 서울특파원(시노하라 마사토)이 군사기밀을 누출시켜 구속되는 일까지 벌어졌 다.한국과의밀접한 인연으로 한국에서의 정보수집력은 발군이다.
러시아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재 해외정보를 전담하는 연방보안부(FSB)요원중 수시로 한국을 드나드는 사람만 20~30명쯤 될 것』이라고 말한다.러시아와의 교역이 집중되는 부산지역은 하바로프스크주 경찰이 맡고 있는 것으로 전 해진다.이밖에도 중국.대만.말레이시아등 동남아국가들도 서울의 산업기술을 노리고 있다.
당하는 쪽만 바보라는 소리를 듣는 국제 첩보전에서 우리 정부및 기업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한 대미(對美) 통상전문가는『여전히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한다.오랜 미국 변호사경험을가지고 있는 전성철(全聖喆)청와대비서관은 『워 낙 많은 정보가쏟아져 나오는 미국에서는 이를 잘 취합하고 분석하는 일만으로도훌륭한정보활동이 가능한데 실제로 그런 능력을 갖춘 곳은 별로 없다』고 말한다.
보다 차원높은 정보를 위해서는 현지 주요 인사들과의 잦은 접촉및 신뢰관계 형성이 선행돼야 하는데 그동안 전문가를 키우지 않은 탓에 이 일도 초보단계다.
안전기획부가 조직개편을 통해 산업정보분야의 인력을 늘리고 관련 정보수집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그러나 이들 역시 공산권에 관한 것외에는 삼성이나 대우등 대기업들보다 별로 나은 것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대 한무역진흥공사(KOTRA)와 무역협회가 산업정보 수집에 애쓰고 있으나 미CIA가 「실질적인 정보기관」으로 간주하고 있는 일본무역진흥회(JETRO)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정보수집.분석에서 일류로 평가받는 일본의 노무라종합연구 소나 미국의 헤리티지연구소.카네기재단과 같은 민간연구소도 없다.일류국가가 되려면 첩보전에서도 뒤져서는 안된다.그게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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