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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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그렇다면 멸망 이전의 종(種)과 멸망 이후의 종은 서로 연결된단 말씀입니까?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민우는 상운의 반발에 빙긋이 웃음지었다.
『증명은 못하죠.그러나 가능은 하죠.제가 지금 이런 얘기들을증명도 없이 함부로 늘어놓는 것은 인간 마음은 그럴 듯하기만 하면 다 그만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아무리 논리정연한 이론도 사람 마음에 그럴 듯하다는 인상을 못주면 다 말짱 꽝입니다.그러나 아무리 그릇된 이론이라도 그럴 듯하면 사람을 움직이는힘을 갖게 됩니다.
저는 그게 바로 진리라고 생각합니다.시대를 초월해 모조리 다맞는 진리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고 그때 그때 인간의 인식 수준에 맞는 설명이 진리가 아닌가 합니다.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언어 체계나 합리 구조로 우주의 신비나 생명의 원리를 정확히 설명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합니다.합리적으로 증명한다고 시도해 봤자 괜히 복잡만 하고 빙빙 제자리를 돌게 되지요.아마도그런 복잡한 논리는 사람들에게 별 설득력을 가질 수 없을 겁니다. 괜히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이나 줘 더 멀어지게나 할 뿐이지요.아마도 생명과 우주를 보다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길은 언어.합리를 초월한 상징과 초합리에 있을 겁니다.그러한 상징과 초합리는 우리의 상상력과 통하며 그것을 통해 우 주만물과생명은 보다 정확히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이런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이태백이는 정말 달 속의 계수나무.옥토끼들과 놀았을지도모르죠.그래서 저는 생명의 원리,우주의 원리를 그렇게 복잡하게생각지 않습니다.그냥 나에게 그럴 듯 하면 그게 생명의 원리고우주의 원리입니다.수십억년동안 서로 주고받은 생명과 우주가 다내 안에 새겨 있으니까요.이 전제를 상운씨께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저는 더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저도 그럴 듯한 것에논리와 과학이 있다고는 생각합니다.그러나 선생님의 논리는 아무래도….』 『아무래도…황당무계하죠.그러나 혹시 압니까? 상운씨의 권태가 이러한 황당무계 속에서 해결책을 찾을지….』 『하긴그렇군요.저는 저 나름대로 권태를 해결하려고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다 동원해 봤지만 아직 황당무계한 방법만은 동원하지못했죠.아니 사실은 저도 나름대로 권태를 해결하다 보니 선생님못지 않게 황당무계한 짓을 많이 했습 니다.거지 짓도 해보고 사기.강간.도둑질도 해보고 제멋대로였으니까요.그게 어쩌면 저도모르게 초이성적.상징적인 해결책을 찾은 것일지도 모르겠군요.계속하십시오.다시는 제 좁은 소견으로 선생님 말씀을 끊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디까지 얘기했던가요?』 『그게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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