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10만 정규직화'…이러니 경제가 죽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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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동부가 공공 부문의 비정규직 근로자 중 10만여명을 정규직화하겠다고 나섰다. 보수가 적고, 신분이 불안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러한 발상은 근시안적이며 무원칙적이다. 시기적으로도 총선용 선심정책이란 의혹을 살 수 있다.

공공 부문에 비정규직이 늘어난 것은 정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불과 몇 년 전에 공공 부문의 비효율성과 철밥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정 분야에 대해 비정규직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생산성이 과거에 비해 나아졌으며 예산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책을 과거로 돌려 무려 10만여명에게 자동 계약갱신.정년제 등을 적용하겠다니 이는 '철밥통' 시절로 돌아가겠다는 뜻이다. 이는 '작은 정부' 원칙에도 위배된다. 23만여명의 공공 부문 비정규직들이 모두 같은 처우를 해달라고 요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에 대한 추가 부담은 결국 국민의 세금이다.

비단 공공 부문뿐만 아니라 500여만명에 이르는 국내 비정규직 문제는 올 봄 노사 최대 쟁점으로 예상되고 있다. 양대 노총이 모두 처우개선을 핵심 요구사항으로 내걸고 있다. 현실적으로 기업들이 이 제의를 수용하기는 불가능해 본격적인 춘투(春鬪)의 요인이 될 것이다. 이런 판에 노동부가 정규직화에 앞장서는 것은 우리의 경제 현실을 무시한 발상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경제회생과 노동시장의 유연성뿐이다. 노동시장이 유연하면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그로 인해 경제가 일어나면 고용이 증대돼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큰 문제가 안 된다. 고임금의 대기업 노조는 기득권을 양보하지 않고, 정규직은 해고도 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기업의 경쟁력이 어디서 생기겠는가.

노동부는 이러한 우리 현실을 노조에 먼저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노조 중심의 기득권을 허무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그런 연후에 기업에도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