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일본 문화의 뿌리는 신도…‘천황제’와 만나 광기 치달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한국인의 일본사, 정혜선 지음·현암사 488쪽 2만5000원

전국에 8만5000개의 신사(神社)가 있는 나라. 인구의 90% 가까운 1억600만 명(일본 문화청 『종교연감』)이 인생의 고비마다 신사를 찾는 나라. 800만이 넘는 신들을 믿으며 모든 신의 우두머리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가 현 ‘천황가’의 조상임을 의심하지 않는 나라.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자 첨단 기술국가인 일본의 독특한 풍경이다. 오죽하면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일본 정치사상가)가 “일본은 문명사에서 완전한 예외”라고 말했을까.

성균관대 인문과학연구소 정혜선 선임연구원이 쓴 이 책은 이 독특한 나라 일본의 본질을 찾아가는 역사서다. 역사서라지만 기계적으로 시대를 구분한 것은 아니다. 역사적 사건과 정치·문화·철학 등 다양한 부분을 살핀다. 두툼한 책을 관통하는 것은 일본 문화의 밑바닥을 흐르는 ‘신도(神道)’에 대한 탐구다.

주술적인 원시 종교이면서도 유교·불교 등 고등종교에 제압 당하지 않고, 오히려 이들을 자신에 맞춰 변화시킨 신도. 이 위력 앞에 오늘날 일본의 불교는 장례 등 신도의 절차를 대행하는 일종의 종교 비즈니스로 변했다. 중국과 한국을 사로잡은 보편적 통치원리 유교·주자학은 일본에서는 핵심 개념을 잃은 채 실천 윤리로 변했다. 일본인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천황제’도 신도와 관련 짓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저자는 저서『일본 공산주의 운동과 천황제』(국학자료원) 외에 ‘천황제’와 신도의 관계를 짚은 다수의 논문을 낸 이 분야 전문가다. 일본인을 하나로 묶는 신도의 괴력이 ‘천황제’와 만나 광기로 치달은 군국주의 시대에 이르면 저자의 글은 한층 세밀하고도 박진감 있게 전개된다.

그런데 일본 문화의 심층을 파헤친 책의 제목이 왜 ‘한국인의 일본사’일까. 책은 고대 한반도와 일본의 인종적·문화적 동일성을 보여주는 사례로부터 시작한다.

1949년부터 오사카대 고하마 모토쓰구(小浜基次) 는 일본 전국에서 수만 명의 두개골을 조사 분석해서 현대 일본인의 원류가 한반도인과 아이누인임을 밝혔다. 도쿄대의 인류학자 하니와라 가즈로(埴原和<90CE>) 는 일본 고대국가 형성기인 7세기에 일본 원주민 죠몬인의 자손과 주로 한반도에서 건너 간 이주민의 인구 구성비가 1 대 8.6에 달할 만큼 이주민이 압도적이었다고 추정한 바 있다. 그래서 문화인류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일본인의 뿌리는 한국’이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슷한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갖고 출발했던 두 나라는 이후 전혀 다른 역사 발전의 길을 걸었다. 왜 그럴까.

저자는 의문에 답하기 위해 일본사회의 저변을 흐르는 심성의 흐름을 추적한다. 고도의 형식미를 추구하는 예술, 선악보다 집단의 이해가 우선했던 삶, 보편적 진리보다 현세적 가치에 천착한 종교·철학 등 일본의 특성을 한국·중국 등의 주변과 비교한다. 지진·해일·화산·태풍 등 혹독한 자연 재해와 섬나라라는 지형적 특성이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막고 원시 종교가 발전해 살아남는 토양이 됐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일본 전통의 이면에서 생존을 위해 애쓰는 인간의 모습, 일본인뿐 아니라 한국인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고된 투쟁의 흔적을 찾아냈다. 인간으로서의 공감을 바탕으로 일본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일본과 비슷한 듯 전혀 다르게 생명력 넘치는 한국문화를 재발견한 것이 큰 소득이다.

이승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