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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난 시달리는 북한에선 … 엘리베이터 자주 멈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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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평양 고층 아파트의 로열층이 자꾸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분석한 통일부 당국자가 24일 전한 얘기다. 평양 만경대 지역의 광복거리.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앞두고 북한이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평양판 '강남'이다.

30층짜리 청년호텔과 광복백화점 등이 솟아 있다. 그 사이에 북한에서 꽤 살 만하다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20~30층짜리 고층 아파트들이 솟아 있다. 탁 트인 전망 때문에 입주 당시 고층이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인기 층이 역전됐다. 전력난 때문이다. 전력 공급이 불규칙해 엘리베이터가 멈춰서는 일이 너무 잦았다. 고층의 경우 수압이 약해 화장실 변기에서 물이 잘 나오지 않아 곤욕을 치르는 일도 벌어졌다. 이 바람에 고층을 기피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북한의 에너지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22일 국회에서 고영구 국가정보원장은 "북한의 에너지 수급률은 45% 정도"라고 했다. 이 바람에 한국에서 개발한 '자전거형 발전기'가 북한 가정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자전거 페달을 돌려 얻은 전력을 축전지에 모으고, 여기에 코드를 꽂아 전구를 켜거나 간단한 전기제품을 연결해 사용하는 제품이다. 헬스클럽에 있는 자전거 운동기구와 비슷한 모양이다. 한국에서 만들어 북한에 반입된 '정품'의 경우 한 시간쯤 열심히 페달을 돌리면 하루 저녁 전등을 켤 수 있는 만큼의 전기를 모을 수 있다.

지금까지 국내 업체가 개발해 지원한 샘플은 십여 대 수준. 그런데 '전력 사정이 안 좋은 북한에선 유망사업'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중국 등지에서 모방품을 만들어 들여오고 있다. 벌써 300~400대가 들어와 북한돈 1200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북한 사무직 근로자의 월평균 급여는 2000원 안팎이다. 업체 관계자는 "남한에선 산골짜기 외딴 절에서나 주문이 오는데 북한에선 관심이 많다"며 "앞으로 개성공단에 진출해 대량 생산할 뜻도 있다"고 밝혔다.

전력 대신 태양열을 이용한 백신 냉장고도 북한에선 유용하다. 대북구호단체인 유진벨 재단은 2002년에 이어 5월 초 두 대의 태양열 냉장고를 평안남도 대안군.천리마군의 인민병원에 전달할 예정이다. 전력 공급이 불안정해 각종 백신을 보관하는 데 애를 먹는 북한을 돕겠다는 취지다. 이 단체는 내년에 북한 전역으로 지원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반면 북한 당국이 심혈을 기울이는 풍력발전의 성과는 미미한 편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태풍이 잦은 한반도에선 풍력 발전이 쉽지 않아 남측에서 지원된 풍력 발전기기 대부분이 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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