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진 겪은 후 늘 헬멧 쓰고 다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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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에 사로잡힌 주변 사람들의 겁먹은 표정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나도 지진 발생 다음날부터 바닥에 놓인 물건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듯한 착시 현상에 시달리고 있어요.”

쓰촨성 청두(成都)시 두장옌(都江堰)에 사는 두카이(杜凱·24·사진)는 “12일 오후 지진 발생 당시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고 했다.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그는 그날 오후 점심 요리를 마치고 동료들과 기숙사 방에서 여느 때처럼 한가로운 오후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과 땅이 뒤집히듯 심하게 흔들렸어요. 테이블 위에 있던 텔레비전이 방바닥으로 떨어졌어요. 지진이란 생각이 번득 들었어요.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조건 밖으로 뛰어나갔죠.”

대로변에는 두카이와 비슷한 ‘지옥 체험’을 한 사람들이 몰려나와 아수라장이었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은 순식간에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했다. 그가 있던 곳에서 불과 몇백m 떨어진 곳에선 두장옌 병원 건물이 무너져 200여 명이 매몰됐다.

“옆 건물도 붕괴돼 10여 명이 매몰돼 숨졌어요. 숨진 사람을 보니 이게 꿈이나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 번쩍 들더군요.”

2층 건물에서 떨어져 다리 뼈가 부러진 친구를 보면서 자신의 볼을 꼬집어 본 후에야 그는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두카이는 20여 ㎞ 떨어진 두장(都江)촌에 사는 부모와 지난해 결혼한 아내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는 허겁지겁 휴대전화를 걸었으나 내내 통화가 되지 않았다. 그날 밤 수십 차례 이어진 여진으로 지진 공포감은 극도로 높아졌다. 급기야 밤이 되면서 폭우까지 쏟아졌다. 그러나 두카이는 가족 걱정에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그는 칠흑 같은 어둠과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20㎞를 단숨에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고향집·건물은 거의 파손돼 있었다. 그러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부모와 아내는 큰 화를 피해 있었다. 특히 아내 배 속에 있는 7개월 된 태아도 현재까지 무탈하다고 한다. “지진이 나던 시간에 마침 들일을 나가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화를 면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적지 않은 고향 마을 사람들이 이번 지진으로 희생돼 너무 서글퍼요.” 그저 감사하다는 생각만 들 뿐이라고 했다. “믿는 종교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지금은 없지만 지진의 공포를 잠재워만 줄 수 있다면 뭐든지 믿어보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지진을 경험한 직후부터 노란 헬멧을 구입해 항상 착용한다”고 했다.

두장옌(쓰촨성)=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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