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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별 반편성 ‘O’ … 아직은 눈치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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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학기부터는 실력에 맞게 수준별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우리 학교가 명문 자율화고가 돼야 한다.”(서울 Y고 2년 김모군)

“교사들의 회의가 많아졌다. 학교 운영계획과 평가 방법 마련을 위해 교사들이 고민하고 있다.”(서울 S고 유모 교장)

“학교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자율시대에 일일이 체크할 수도 없다.” (서울시교육청 A간부)

정부가 초·중·고교 운영에 일일이 개입하지 않기로 한 ‘4·15 학교 자율화 조치’가 15일로 한 달째다. 수십 년간 관치교육에 길들여져 있던 초·중·고교의 변화가 금방 나타나지는 않고 있지만 학교는 학생의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민 중이다.

일부에서는 변화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교육 현장은 매우 느리게 변화한다. 20~30년간 타율 관행에 젖어 있던 교사가 한 달이나 1년 새에 쉽게 변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일부 교육청과 학교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자율화 조치 호응 낮아=학교 자율화 조치의 핵심은 ▶실력에 따른 반 편성(우열반 포함) ▶사교육업체의 방과 후 학교 참여 ▶0교시 수업(정규 수업 전 오전 7시대 수업) 허용이다.

14일 본지가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을 취재한 결과 실력에 따른 반 편성을 허용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반면 학생 수준에 따른 과목별 이동수업은 활성화될 전망이다.

방과 후 학교를 사교육 업체에 위탁 운영할 수 있게 자율화한 곳도 서울·부산·대구 등 3곳에 불과하다. 김성기 서울시교육청 교육과정정책과장은 “고교 대상으로 방과 후 학교 영리법인 위탁 운영에 대한 의향을 조사 중”이라며 “16일까지 조사를 끝낼 예정이지만 지금까지 학원 측에 강좌를 내주려는 학교는 10곳이 안 된다”고 말했다. 강좌도 영어·수학 같은 주요 과목이 아닌 통합논술이나 예체능 과목을 가르칠 학원을 찾고 있는 정도다.

유수열 단대부고 교장은 “사교육 업체가 학교에 들어오는 것은 학부모 요구가 있어도 기존 교사들의 반발 등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설 모의고사도 허용됐지만 아직까지 참여 의사를 밝힌 학교가 많지 않다. 자율화 조치 뒤 23일 첫 사설 모의고사를 주관하는 유웨이중앙교육은 “사립고와 공립고의 호응도가 다른 것 같다”며 “사립고는 학교 단위 시험을 치르겠다는 문의가 들어오고 있지만 공립고는 아직 연락이 없다”고 말했다.

◇학교 바뀌고 있나=중3 학부모 이경화씨는 “학교가 바뀌면 비싼 사교육비를 들여가며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필요가 없다”며 “1학기는 어렵겠지만 2학기부터는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기성 경기고 교장은 “수준별 수업 내실화를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추가 교사 확보 문제나 교실 공간 부족 때문에 큰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며 “차근차근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박원영 여의도고 교장은 “1학기, 1년 단위로 정해지는 학교 교육과정 운영상 지난달에 나온 자율화 조치가 현장에 바로 적용되기는 쉽지 않다”며 “곧 학교 정보 공개 등이 법령으로 결정되고 서울 지역의 고교 선택제가 내년으로 다가와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사교육 업체들은 관망 중이다. 종로학원 관계자는 “갑작스레 자율화 조치가 발표돼 학원들도 방과 후 학교 진출을 고민 중”이라며 “수익성이 낮아 학교 진출은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배노필·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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