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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축제 거품을 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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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왕벚꽃축제.유채꽃축제.억새꽃축제. 또 방어축제.한치축제.자리축제…. 모두 꽃과 해산물 이름을 딴 제주의 축제 이름들이다.

어디 이뿐이랴. 탐라.감귤.고사리.들불.서귀포 등 제주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갖가지 이름의 축제들이 넘쳐난다. 봄이 오자 벌써부터 축제 준비로 섬이 부산하다.

올해 제주지역에서 개최되는 축제만 해도 47종이다. 그 양으로 짐작한다면 일년 내내 축제판이 벌어지는 셈이다. 이 많은 축제판만큼이나 제주땅이 신명으로 들썩거리고 이로 인해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 많은 축제를 들여다보면 그 대부분이 축제의 소재만 다를 뿐이다. 유명가수 초청공연.사생대회.먹거리 장터 등 모두들 비슷한 프로그램들로 짜여 있다. 게다가 행정기관이 주도하고 지역 주민의 적극적 참여가 없는 점까지 닮아 있다. 이러니 들썩거리기는커녕 지역민의 관심에서 벗어나 기껏해야 동네잔치 수준으로만 준비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은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화관광부에서 전국적으로 문화관광 축제로 추산하고 있는 것만도 650여개라 한다. 아무리 문화의 시대이고 지역축제가 관광상품이 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많아도 너무 많다.

그동안 지역축제에 관해 여러 층위에서 비판적 논의가 있어왔다. 축제의 체계적인 추진전략 부재, 축제 주제의 불명확성, 축제 조직자들의 전문성 결여, 재정의 영세성, 경영마인드 미흡 등 다양한 진단이 제기됐다.

과시적 행정에서 비롯된 행사거리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많았다.

그런데 지역축제가 과도하게 많은 한 이런 진단과 개선의 노력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너무 많은 축제에 자투리 투자를 하는 형편에서는 재정의 영세성을 벗어날 수 없고 결국 지역축제의 문제점들은 악순환할 수밖에 없다. 또 그 문제점들은 궁극적으론 지역민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물론 축제가 갖는 일탈성이나 오락성 등 긍정적 기능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또 축제를 통해 지역민의 화합을 도모하고 지역문화도 발굴하자는 것, 또 지역 이미지도 높이면서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하자는 뜻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마다 경쟁하듯 축제를 급조하면서 생기는 문제를 고려하면 너무 많은 지역축제는 분명 득보다 실이 크다.

사실 상당수의 지역축제는 그 목적이나 내용성, 또 효과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구색맞추기식으로 급조돼 왔다. 아마도 제주세계섬문화축제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세계 섬들의 향연'이라는 거창한 슬로건을 내걸고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불과 2회로 막을 내렸다. 주먹구구식으로 기획해 개최 의도를 살리지도 못하고 엄청난 재정과 인력만 낭비한 것이다. 지역사회의 참담한 자괴감과 행정에 대한 불신을 낳은 것은 물론이다. 이런 상황은 현재 존속되고 있는 상당수의 타지역 축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축제의 고질병이 여전히 재현되고 있는 지금 이젠 참으로 축제 전반에 대해 대수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지금은 그야말로 거품을 빼야 할 때인 것이다. 너무 많은 축제를 벌이고 예산을 늘리려 하기보다는 특정한 프로그램의 축제에 초점을 맞추고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으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 지자체가 제대로 된 축제문화를 육성할 의지를 가지고 과감히 축제의 통폐합에 나서야 한다. 거시적으로는 지역 간 조정도 필요하다. 축제평가시스템을 도입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각 지자체와 문화부는 축제의 성격 및 목적에 따른 객관적인 평가기준을 마련하고 그에 근거해 축제를 통폐합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축제가 본래의 목적대로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

하순애 제주도 문화재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