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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폄훼 바로잡고 싶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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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006년 9월 25일 ‘역사 바로보기’ 편으로 시작한 ‘이원복의 세계사(史·事) 산책’이 지난달 28일 ‘정통성’ 편으로 마무리됐다. 만 1년7개월, 총 73회에 걸친 연재 기간 동안 많은 독자가 지지를 보냈다. ‘산책’을 마친 이원복(62) 덕성여대 교수를 서울 역삼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국민 만화가’의 책상 위는 깔끔했다.

“연재 당시엔 대한민국의 정통성 흔들기와 역사에 대한 폄훼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습니다.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죠. 이제 ‘정권 교체’도 됐으니 아름답게 물러나고자 합니다.”

매주 월요일, 스물네 컷 만화를 통해 그는 “닫힌 민족주의가 아닌 열린 국민주의가 필요하다” 등 글로벌한 시각이 담긴 목소리를 내왔다.

‘자본주의 공산주의’를 쓸 당시 목격했던 붕괴 직전 동구권 국민의 참혹한 삶은 그에게 자본주의에 대한 확신을 심어줬다. 새 대통령에게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할 만큼 강한 믿음이다.

“사회주의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상이었죠. 인간이 그것을 지옥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 이상은 존속하지 못합니다.”

중앙일보에 1년 7개월 동안 연재된 ‘이원복 세계사 산책’의 삽화들.

편향된 시각을 버리고 세계 각국을 다양하게 연구하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정치와 외교, 경제와 문화 모든 면에서 ‘존경 받는’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다. 다시 쓰는 『먼 나라 이웃 나라』에는 스페인과 러시아, 중국을 추가할 생각이다. 새로 만드는 『가로세로 세계사』에서는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 등 태평양의 젊은 국가와 아프리카, 남미 대륙을 다룰 예정이다.

한마디 한마디가 반응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그는 이미 ‘문화권력’이다. 1300만 부가 넘게 팔린 『먼 나라 이웃 나라』 등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많은 이들의 정신에 영향력을 미쳤다.

“신념을 위해 만화를 그립니다. 그것이 저의 ‘정치’겠죠. 모든 인간은 정치를 합니다. 하지만 정계엔 기웃거린 적도 없고 콜을 받은 바도 없어요. 제 시간은 오로지 만화를 그리는 일과 생활을 관리하는 데 씁니다.”

요즘은 와인에 빠져 있다. 정확히는 와인을 통한 세계 읽기다. “지난 2년간 거의 매일 와인 한 병씩을 마셨습니다. 『와인의 세계』에 이어 『세계의 와인』도 얼마 전 탈고했죠.” 그에 따르면 일본에는 메이지 유신 이후 150년 동안 와인을 숭배하면서 서양에 문화적으로 굴복한 ‘원죄’가 있다. 그의 메시지는 명쾌하다. “와인은 음료일 뿐입니다. ‘주인’으로 마셔야죠.”

경기고와 서울대 출신의 독일 유학파 교수는 일을 놀이처럼 즐기는 ‘워크필리아’가 됐다. 평생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소년 작가’ 시절 꿈을 따라서다. 적성도, 흥미도 모르는 채 학원에, 과외에 시달리는 아이들과 그런 교육을 강요하는 부모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근시안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옆집 아이를 이겨라’가 아니라 국제 경쟁력을 키워줘야죠. 모든 배가 태평양으로 몰려들면 내 몫으로 돌아오는 고기가 적어지는데, 인도양이나 대서양에는 또 다른 고기가 있거든요. 남들이 안 하는 것, 못하는 것에서 자신만의 경쟁력을 찾도록 해야 합니다.”

글=이진주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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