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석천에서 차를 끓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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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석천에서 차를 끓이며’- 초의 선사(1786~1866)

하늘빛은 물과 같고 물은 안개와 같아

이곳에 와서 지낸 지도 어느덧 반년일세.

따스한 밤 몇 번이나 밝은 달 아래 누웠나

맑은 강물 바라보며 갈매기와 잠이 드네.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 원래 없었으니

비방하고 칭찬하는 소리 응당 듣지 않았네.

소매 속에는 차가 아직 남아 있으니

구름에 기대어 두릉의 샘물을 담는다네.


초의는 다산과 추사와 같은 거유(巨儒)들과 깊은 교분을 나눈 선승이었다. 그가 살던 시대는 근대의 실천과 실용을 강조하던 시기로 선사는 『동다송』 『다신전』과 같은 차에 관한 저작물뿐 아니라 시집인 『초의시고』를 통해 잔잔하게 오도를 노래했다. 해남 대흥사에 머물던 그가 한양에 온 지도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두릉 위 달은 휘영청 밝고 갈매기도 잠이 드는지 하늘빛만 무상한 세월을 감싼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던가? 시냇물은 돌 틈에 부서지며 차 끓는 소리는 솔숲에 깃드는데 미워하는 마음에 칭찬하는 소리에 쓸리지 않으니 누가 너이고 누가 나이던가? 마음이 티끌 없이 둥그니 세상 어느 곳인들 절경이 없겠는가. 서늘한 차 향기에 기쁨과 슬픔이 사라지고 허공처럼 걸림이 없구나.

<박주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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