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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젊디젊은 ‘국민 어머니’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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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 03면

요즘 ‘국민 어머니’ 분야는 경쟁이 치열하다. 고두심과 김해숙이 먼저 떠오르고, 혹자는 나문희와 강부자·김수미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요즘 KBS-2TV ‘엄마가 뿔났다’로 다시 한번 안방을 장악한 김혜자 앞에선 다들 한 수 접게 된다. 이처럼 많은 이가 김혜자에게서 ‘한국의 어머니’를 느낀다. 하지만 기자는 이분을 생각하면 약간 이질적인 두 장면이 떠오른다.

KBS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김혜자

첫 번째. 한 토크쇼에 김혜자와 김수미가 나란히 출연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김수미가 김혜자에게 물었다.
-수미: 언니, 김치 담글 줄 알아?
-혜자: (천진난만하게 눈을 깜빡이며) 몰라.
-수미: 김치 담가 보긴 했어?
-혜자: (벌써 웃음이 나와 허리가 꺾어진 상태) 아니, 안 해봤어.
-수미: 그런 사람이 무슨 한국의 어머니야? 난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웃겨 죽겠어.
김혜자는 김수미보다 나이로 10년, 연기로 9년 선배다. 그런데도 참 스스럼없다 싶었다.

두 번째, 이것도 꽤 오래전 일이다. 한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신인 여자 탤런트를 리포터 삼아 김혜자를 인터뷰하게 했다. 하늘 같은 선배가 마냥 어려웠던 리포터는 살얼음 걷듯 질문을 던졌다. 분위기가 좀 풀어졌나 싶었는데 문제의 질문이 나왔다. “그런데 선생님, 최불암 선생님과 워낙 부부 연기를 많이 하셨잖아요. 혹시 가끔 진짜 남편과 헷갈리실 때도 있지 않아요?” 웬만한 선배 같으면 ‘하하’ 웃으며 적당히 넘어갈 만도 했다. 하지만 이분은 정색을 했다. “아니, 가끔 이런 질문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내가 바보야? 어떻게 그걸 헷갈릴 수가 있어?”

안 그래도 바짝 긴장해 있던 리포터는 그냥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물론 이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 중 누구도 그날의 ‘김혜자 선생님’에게서 악의를 느끼지 못했다. 단지 어느 정도 나이에 이른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짐짓 속내를 감추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는 점이 뭔가 색다르다는 느낌을 주긴 했다.
알고 보니 ‘평소의 김혜자’와 드라마 속 ‘국민 어머니’의 차이가 꽤 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전원일기’를 집필하며 거의 20년 동안 호흡을 맞춘 김정수 작가는 그를 가리켜 “영원히 아줌마가 될 것 같지 않은 소녀”라고 잘라 말했다. 평소에는 지극히 세련되고 예민한 귀부인인 그가 어떻게 카메라 앞에만 서면 무식한 촌로가 되고, 궁상맞은 서민 가정의 어머니가 되는지 너무나 신기했다는 얘기다.

김혜자는 요즘 OBS-TV 토크쇼 ‘김혜자의 희망을 찾아서’에서 호스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를 MC로 데뷔시킨 주철환 OBS 사장도 비슷한 말을 했다. “독서량이 많고 아이디어도 풍부하지만 가장 큰 특징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소녀다운 상상력이다. 그는 결코 대본에 있는 대로 질문하지 않는다. 가끔은 게스트도 당황하지만, 바로 그 부분이 그의 매력이다.”

나름 그를 잘 안다는 두 사람의 말에선 ‘소녀’라는 공통분모가 등장한다. 그의 내면에는 도저히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천진난만함이 숨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김혜자는 어떻게 실제의 모습과는 거의 정반대인 촌스럽고 궁상맞은 아줌마 역할을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해내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두 사람의 답 또한 일치한다. “그건 재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아마도 김혜자는 태어날 때부터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국민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세계의 어머니’로 변신했다. 1992년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소말리아에 다녀온 이래 수백 명의 어린이가 그와 결연해 자라나고 있다. 중국어권 최고의 인기 그룹인 ‘F4’의 멤버 옌청쉬(言承旭)까지도 “중국어로 번역된 김혜자의 저서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읽고 감동을 받아 봉사활동에 뛰어들게 됐다”고 말했을 정도다.

예순 일곱. 하지만 이 여배우는 현재 시청률 수위권 드라마의 주인공이며, 곧 톱스타 원빈과 영화 ‘마더’에서 공연한다. 예순이 넘어서도 천연덕스럽게 기자들에게 “제가 주연 아니면 원래 잘 안 하는데…”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2년 전, MBC-TV ‘궁’ 출연 때)이며 세계를 누비는 자선운동가다. 어딘가 기대고 싶은 ‘고향의 어머니’도 좋지만, 이렇게 발랄한 ‘젊은 엄마’ 또한 대단히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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