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반전 이룬 ‘서울시장의 추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10일로 잡힌 이명박(얼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오찬 회동은 소원했던 두 사람 간 만남 이상의 의미가 있다.

여권 국정운영 기조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총선 직후부터 추진해 온 만남으로 새삼스럽지 않다”고 설명했지만, 소극적이던 두 사람을 테이블로 끌어내는 데는 최근의 쇠고기 파문이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번 쇠고기 파문 뒤에 숨어 있는 메커니즘에 주목하고 있다. 단순한 광우병 논란이라기보다 새 정부의 국정 방향에 거부감을 가진 세력들이 이끄는 일종의 ‘저항’적 성격이 강하다고 보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 말기와 대선을 거치며 사분오열됐던 진보진영이 총선을 거치면서 세를 결집하고, 쇠고기 파문을 계기로 단결된 힘을 과시했다”고 분석했다. 2002년 대선 때와는 달리 2007년 대선에서 중립지대로 남았던 인터넷 여론이 진보 쪽으로 치우치는 현상도 비슷한 맥락이라는 것이다.

진보 진영의 결집 흐름과는 달리 보수진영은 사분오열돼 있다. 4월 총선에서 3분의 2에 해당하는 200여 석을 싹쓸이했지만 범보수진영은 한나라당 내 친이(친이명박), 한나라당 내 친박(친박근혜), 한나라당 외부의 친박, 자유선진당 등으로 갈려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같은 상황에선 새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 개혁 프로그램이 힘을 받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여권 내부에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6월 18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각종 규제 개혁·공기업 개혁 관련 법을 처리해야 하는 등 산적한 숙제를 안고 있는 이 대통령으로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던 셈이다. 여권 일각에선 난국 탈출의 해법으로 청와대 개편론이나 인적 쇄신론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이 청와대 개편과 같은 미시적 조정보다 박 전 대표와의 국정 동반자 관계 회복이란 거시적 선택을 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에게 “진정성을 가지고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국민들이 알아주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박 전 대표와의 관계가 회복돼 여권 전체가 안정을 찾고 각종 국정 프로그램이 실적을 낼 경우 추락했던 지지율도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측근들 사이에선 취임 초반 갖가지 구설로 체면을 구겼다가 눈에 띄는 성과로 국민 지지를 회복했던 ‘이명박 서울시장의 추억’을 떠올린다. 이 대통령은 2002년 시장 취임 직후 거스 히딩크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아들을 불러 기념 촬영을 하게 했던 히딩크 사건, 2004년 7월 서울시 봉헌 발언 등으로 휘청댔다. 하지만 이후 대중교통체계 개편과 청계천 복원 등의 성과를 보여주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바 있다. 이 대통령과 가까운 한 의원은 “이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발동이 늦게 걸리는 타입”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에게 박 전 대표와의 회동은 재도약을 위한 첫 단추가 될 전망이다. 여권 관계자는 “과거의 앙금을 털고 진정한 ‘정치적 동반자’로서의 신뢰를 쌓을 수 있느냐가 향후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승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