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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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길례 여사를 체념하기 위해 아버지가 시골에 내려간다면 따라내려가지 못할 것도 없다.남편과는 완전히 화해한 것은 아니지만일단 「휴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짐짓 물어봤다.
『왜 갑자기 내려가실 생각을 하셨어요?』 『이서방께 혼자 일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 부담이 되는구나.농장쪽 일이야 어차피 텃밭 가꾸기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목장 일은 지금이 고비인데 낙농관계 사업이 궤도에 오를 때까지만이라도 옆에 있어줘야 할 것같다.』 일에 몰두하고 싶은 아버지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여자를 잊기 위해서라면 더욱 일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박물관대학」을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 아쉽구나.』 「박물관대학」수료까진 아직 달반 이상이나 남아있다.
『요담에 또 다니면 돼요.해마다 두차례씩 모집하고 있는 걸요.』 경쾌하게 아버지 말을 막았다.
『…그래,인공수정 일은 생각해봤어?』 아버지는 아리영 문제로화제를 돌렸다.
『굳이 인공으로 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꼭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요.』 아리영은 정말 그런 믿음으로 살아왔다.
『가령,아버지가 새장가드셔서 아이를 두신다면 그 아이가 「마중아기」가 돼서 제 아이를 불러들여줄지도 모르구요.장가드셔요,네? 아버지.』 어리광부리듯하자 아버지는 쑥스러운 듯 픽 웃었다. 『실없는 소리!』 『왜요? 돌아가신지도 십년 이상 지났으니 어머니도 이젠 놔 주실 거예요.군식구 안 딸린 깨끗한 분이시라면….』 아리영은 끝말에 힘을 주었다.아버지 얼굴에 그늘이스쳤다. 군식구 안 딸린 깨끗한 분-.
유부녀인 정길례 여사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뜻이 그 한마디에 담겨있음을 아버지가 모를 리 없을 것이다.정여사에게 지나치리만큼 신경쓰는 자신이 언뜻 의아스레 여겨졌지만 그런 느낌을 얼른뭉개버렸다.
『아버님은 정여사님을 좋아하시는 것같지 않소?』 시동생 건으로 호텔서 식사하고 돌아온 날 밤 남편이 말했다.
『정여사님은 어엿이 남편을 둔 가정주부라구요!』 아리영은 톤을 높였다.
『남의 부인이라 해서 우정도 품지 못한단 말이요?』 곧장 볼멘 소리가 돌아왔다.하기야 아리영도 아버지와 친구가 되어달라고정여사에게 청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딸과 시동생을 맞선보게 하고 돌아오는 길목에서 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친구」이상의 선을 넘지 말아달라는당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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