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스살롱>김용준 헌법재판소장 부인 徐采元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김용준(金容俊.58)헌법재판소 소장에게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다.57년도 사법시험 최연소 수석합격자,최초의 장애인 대법관,불굴의 법원 어른….
세살때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가 정상인보다 가늘고 약한 金소장은 신체의 장애를 의지로 극복,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대표적인 한국인이다.
법이론과 실무,인품을 겸비한 「소신 법관」으로 존경받는 그에게는 32성상(星霜)을 함께 해온 부인 서채원(徐采元.56)여사가 있다.
서울 삼청동 헌법재판소장 공관에서 만난 徐여사는 부군의 점수를 매겨달라는 주문에 서슴지 않고 『남편으로서는 빵점,법관으로서는 만점』이라고 말한다.
34년의 법관 재임기간중 거의 매일 일거리를 싸들고 들어온 남편,네 아이를 낳아키우면서 한번도 아이를 안아준 기억이 없는남편…. 하지만 70년대 학생운동으로 잡혀온 대학생들을 재판하고 돌아온 날이면 대문 앞에서 『여보,오늘 또 학생들을 구해주지 못했어』라며 울던 남편을 법관으로 신뢰하기에 그 「빵점과 만점사이」를 메워온 자신의 결혼생활 32년이 무엇보다 귀 하게느껴진다며 徐여사는 활짝 웃는다.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진 것은 그가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반이던 62년 봄.「소년범죄」에 관한 졸업논문 때문에 법원을 들락거리다 「서른은 넘어보이던 장애인 판사」와 마주치게된다.金소장의 동생과 徐여사의 사촌오빠가 단짝친 구인데다,당시金소장은 이미 최연소 사시합격에 장애인판사로 유명해진 상태여서『처음 만난 사람들치고는 피차 어색하지가 않았다』고.
『그저 저 분에게는 내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나중에 지내고보니 정작 제쪽에서 그 사람이 필요했었지만요.』 비교적 유복했던 친정에서는 당연히 이 결혼에 반대했다.「훌륭한 젊은이인 것은 분명하지만 굳이 다리가 아픈 사람을 선택할 필요가 있겠는냐」는 것.
『상대방이 장애인이라는 것은 전혀 의식하지 않은 선택이었어요.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애기 아빠(徐여사는 남편을 이렇게 부른다)는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고사는 사람 같으니까요.』 결혼 후 네아이가 잇따라 태어났고,박봉의 살림과 아이키우기는 고스란히 그의 몫이 됐다.그렇게 30여년,밤늦게 일하는 남편에게 방해가 될까봐 단칸셋방에서 우는 아이를 안고 밤새 서성거린 기억도 이제는 즐거운 추억.
일밖에 모르는 남편과의 30여년은 徐여사를 「시간 요리의 대가」로 만들어줬다.「밖에서 일하는 엄마가 아닌 이상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는 반드시 집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집안 대소사는 모두 오전 중에 처리한다.
꼭 보고 싶은 영화나 연극이 있으면 부담없이 혼자 간다.
『밀린 대화요? 20여년전부터 습관이 된 주말 부부여행에서 풀지요.하지만 「이심전심」이 워낙 몸에 배어서인지 별다른 말이필요없네요.』 서로의 존재만으로 크나큰 위안이 된다는 徐여사 부부에게는 재미(在美)변호사와 고양시 법원판사에게 시집간 두 딸과 사시 준비중인 큰아들(炫中.28),고려대 법대 대학원 재학중인 막내아들(範中.26)이 있다.
〈李德揆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