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에세이] “평화헌법 9조 지키자” … 일본서 ‘9조차’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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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일본에서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헌법 9조를 지키자는 바람이 불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때부터 거세지기 시작했던 보수 우경화와는 반대 방향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보수 우파의 계보를 이어받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지난해 9월 퇴진하고, 아시아 중시 성향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정권이 들어서면서 두드러지고 있다. 헌법 9조는 전쟁을 영구히 반대하고 군대 보유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사히(朝日) 신문이 헌법기념일을 맞아 3일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66%가 헌법 9조를 유지하자고 응답했다. 반면 개헌파는 23%에 불과했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호헌파가 49%, 개헌파가 33%였다. 아사히는 “보수적인 아베 정권이 실정을 거듭한 끝에 몰락하면서 우경화 바람이 수그러들었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시민단체의 활발한 반전 운동이 변화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이중에서도 3일 도쿄 히비야(日比谷) 공원에서 열렸던 시민단체 ‘9조 피스 워크(헌법 9조 평화 걷기)’ 환영 행사가 특히 주목받았다. 회원 150여 명은 지난 69일 동안 전국을 걸어 다니면서 호헌 운동을 펼쳤다. 2월 24일 히로시마(廣島)의 원자폭탄 기념관을 출발한 이들은 하루 20㎞씩 총 1200㎞를 걸어서 이날 도쿄에 도착했다. 히토쓰바시(一橋)대의 호시노 히로미(25)는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헌법 9조를 지키자는 취지에서 오사카(大阪)시에서 선을 보인 ‘9조차(九<6761>茶)’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간사이(關西)공동인쇄소는 3년 전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캠페인 홍보 차원에서 고급 녹차를 개발했다. 9조차는 지난달까지 20만 병이 팔렸다. 공동인쇄소 관계자는 “예상 외로 호응이 좋아 기존 350mL 제품에 이어 이달 초 500mL짜리를 새로 선보였다”고 말했다. 1병에 100엔(약 1000원)으로 다른 음료회사 제품보다 저렴하다. 인터넷을 통해 판매된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반일 성향의 영화 ‘야스쿠니(YASUKUNI)’의 상영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중국 출신 감독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었지만 보수 정치인과 우익 단체들이 “일본을 폄하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비판해 당초 예정보다 3주 늦게 상영이 시작됐다. 이런 변화는 모두 성숙한 시민 의식에 힘입고 있다. 한국의 시민운동에도 시사점을 주는 신선한 변화가 아닐까.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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