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신세대작가현지인터뷰>3.무라카미 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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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76년은 일본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해였다.그해 아쿠타가와(芥川)상을 수상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기존의 문학경향을 완전히 뒤엎는 파격적인 작품이었다.마약.폭력.섹스로 얼룩진 이 포르노그래피는 소설이라기 보다 하나의 이미지를 좇아 끝없이 파열하는 록음악에 가깝다.일본문학은 이 낯선 작품을 가장 권위있는 신인문학상 수상작으로 내놓음으로써 또 하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전통과 단절된 채 성장한 도시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대변하는 신세대문학이 그것이 다.
23세에 『한없이…』를 발표한 무라카미 류(村上龍.43)는 일본 신세대문학의 산 역사라 할 수 있다.
무라카미가 『한없이…』를 발표한 시기는 일본이 경제적으론 강국이지만 문화적으론 미국에 종속돼 있다는 자의식이 싹트던 때였다.이때 무라카미의 관심은 이미 육체는 미국 문화에 중독돼 있으면서 의식은 이를 거부하는 인물에게 쏠린다.이들 은 美해군기지가 있는 도시에서 태어나 고교 졸업직후 그룹사운드를 결성하고8㎜영화를 제작하는등 미국 대중문화에 심취해 있으면서도 전학련(全學聯)의 美항모입항 반대시위를 보고 감동받았던 무라카미의 자화상이다.『한없이…』에 나오는 미군 기지 주위의 젊은이들은 바로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자신의 내면과 싸우다 출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당시 젊은이들의 고민을 대변하고 있다.
이처럼 자의식으로 가득찬 자신과의 싸움은 5년뒤에 발표한 『코인 로커 베이비스』에서 구체적인 적을 향한 테러로 발전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태어나자 역전의 코인로커(유료사물보관함)에버려진 두 아이다.같은 집에 입양된 이들은 성인 이 돼 어머니를 찾아내 살해하고 2차대전 중에 폐기된 초고성능 폭약을 찾아도쿄시내를 폭파한다.이들은 코인 로커를 자궁으로 여기며 도쿄가미국자본주의 문화로 더럽혀졌다고 생각한다.코인 로커가 상징하는자본주의 문화속에 태어난 이들이 자본주의 문화를 부정하는 양상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다.결국 이 작품은 『한없이…』에서 전개되고 있는 내면의 싸움을 공간만 외부로 옮겨놓았을뿐이다. 그러나 83년 『사랑과 환상의 파시즘』 에서부터 무라카미는자신과의 싸움을 중단하고 외부와 싸우기 시작한다.『사랑과…』은광고성우로 대중적 스타가 된 미소년이 그 목소리를 정치선전에 이용해 젊은이들을 규합하고 급기야 미국과 전쟁을 일으킨다는 내용이다.94년작인 『오분후의 세계』도 2차대전때 일본이 항복하지 않고 지하로 잠복해 계속 전쟁을 수행하는 상황을 설정한 가상소설이다.
두 작품은 각각 개별적인 주제를 갖고 있지만 패전전의 일본정신에 대한 향수가 강하게 스며있다.특히 『오분후의 세계』는 지하에서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국민게릴라」들을 영웅적인 존재로 그리는등 군국주의 색채가 강해 평론가들로부터 비판 받기도 했다. 데뷔작 『한없이…』에서 최근작인 『오분후의 세계』에 이르는무라카미 문학의 변천과정은 일본 신세대문학의 행로를 가장 선명하게 요약하고 있다.그와의 인터뷰는 이 변화의 의미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는 작업실에서 영화관계 일을 하고 있었다(무라카미는 미술대학을 졸업했고 라디오 음악프로 디스크 자키,TV심야토크쇼 진행을 맡은 적도 있으며 지금까지 다섯편의 영화를 감독했다).「일본에서 가장 대하기 편한 작가」라는 한 평론가의 귀띔대로 그는편안한 사람이었다.이 점이 인터뷰를 하는데는 오히려 난점이었다.그는 대체로 말을 길게 늘어놓는 여느 작가와 달리 모든 질문에 짧게 답했다.
-『한없이…』에서 『오분후의 세계』까지 작품 경향이 변한 것같다.그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마디로 감각적인 것에서 역사적인 것으로 변했다.데뷔를 너무 빨리 한 탓인지 처음엔 자각없이 본능적으로 글을 썼다.세월이 흐르면서 기술도 늘고 정보량도 늘었다.요즘엔 역사와 정치를소설속에 끌어들이는데 관심이 많다.』 -『한없이…』와 같은 초기소설에는 미국문화에 중독돼 있으면서 이를 거부하는 인물들의 고통스런 양상이 그려져 있었는데 최근작에는 이런 인물들이 자취를 감췄다.그들이 어떠한 출구를 찾아 나갔는지를 다룬 작품은 없는 것 같은데….
『일본에서 미국 자본주의 대중문화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그런 인물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오히려 그 반대다.초기소설을발표할 때는 미국문화가 아직 완전히 생활속으로 스며들지 않았을때여서 그같은 자의식도 가능했다.그러나 지금의 일본은 미국문화를 완전히 일본화시킨 상태다.내 소설속의 인물들도 출구를 찾을필요가 없어졌다.왜냐하면 외부에서 출구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미국문화를 일본화했다는 말을 했는데 소설은 어떤 영향을 입었다고 보는가.또 무국적적이란 비판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일본소설에 미국적인 생활양식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일본에 있기 때문이다.앞으로는 누가 소설을 써도 그런 식으로밖에 쓸수 없다.국적성을 논하는 기준자체가 바뀌어야 하지않나 싶다.』 -한국의 평론가들은 『오분후의 세계』를 군국주의성향이 짙다고 비판한다.당신이 말하는 역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궁금한데….
『역사를 도입한 것은 역사의 모순을 말하기 위해서다.일본은 젊은이들을 가미카제로 내보내면서 일본영토에 미군이 한명도 상륙하지 않았는데 무조건 항복했다.히틀러는 자기 머리 위에까지 적기가 날아왔을때 비로소 항복했다.그런 식으로 쉽사 리 항복하려면 애초에 전쟁을 일으키지 말았어야 했다.그런 모순을 보여주기위해 「오분후의 세계」를 썼다.』 ***“군국주의자” 비판 -한국에서는 역사라고 하면 먼저 리얼리즘을 떠올린다.당신 소설은역사를 도입해도 거의가 가상소설이던데….
『일본사람들은 전쟁중의 일을 잊고 싶어하기 때문에 전쟁이야기를 써도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그래서 역사를 과거의 것으로 쓰지 않고 현재와 연결돼 있는 방식을 취한다.역사 자체가 늘 현재와 연결돼 있지 않는가.』 -소설을 쓰면서 영화도 감독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장단점이 있다면….
『영화를 하면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고 새로운 장소를 찾게 된다.이런 체험이 소설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서로 방해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감독으로는 소설가만큼 알려지지 않았는데 어떤 영화들인지 궁금하다.
『서구에서는 영화감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토파즈」(92년)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도 타고 흥행에도 성공했다.영화는 주로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각세계를 다룬다.「토파즈」는 섀도메저키즘(SM),제작중인「교코」는 춤에 전 생애 를 건 일본여성 얘기다.』 -한국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가.
『아직 없다.그러나 한국은 관심이 많은 나라다.어머니가 한국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여고를 졸업했다.나도 곱창전골이나 게장같은 음식을 좋아하게 됐다.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가 볼 생각이다..』 무라카미는 코냑을 마시며 질문에 답했으며 『작가같지 않아 보인다』는 말에 유쾌해 했다.그는 신주쿠의 고층빌딩숲 한가운데 있는 센추리 하얏트 호텔의 객실을 전세내 작업실로쓰고 있었다.한달에 1주일정도 작업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했다 .그는 작가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울때 글을 더 잘 쓸수 있다고 믿는 사람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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