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배명복시시각각

리더십 또는 팔로어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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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새삼스레 리더십(leadership)과 팔로어십(followership)을 거론하는 것은 16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때문이다. 진정한 지도자는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끌고 가기보다는 사람들을 다독이며 뒤에서 따라가는 사람이라는 역설의 진리를 사르코지를 통해 재확인하게 된다.

1년 전 사르코지는 프랑스를 침체의 늪에서 구해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기대 속에 엘리제궁에 입성했다. 적어도 그라면 쇠락하는 프랑스에 필요한 개혁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프랑스인들은 기대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일 하나만큼은 딱 부러지게 할 것으로 보고 다른 결점에는 눈감아줬다.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해 대선에 이어 총선에서도 압도적 지지로 의석을 몰아줬다.

하지만 사르코지의 지지율은 급전직하(急轉直下)로 떨어지고 있다. 취임 초기 65%에 달했던 지지율이 최근 조사에서는 32%까지 내려갔다. 집권 1년 만에 지지율이 반 토막 난 것은 프랑스 제5공화국 50년 역사상 처음이다.

취임 일성으로 그는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고비용·저성장·고실업의 ‘프랑스병’에서 나라를 구하겠다고 했다. 영·미식 모델을 도입한 과감한 개혁으로 프랑스 사회를 바꾸어 놓겠다고 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인들은 의욕만 앞섰지, 그동안 뭐 하나 제대로 이루어 놓은 것이 있냐고 그에게 묻고 있다. 소리만 요란했지, 성과가 없지 않으냐는 것이다. 임기의 5분의 1밖에 못 채운 그로서는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정히 보면 자업자득이다.

사르코지는 개혁은 집권 초기에 해치워야 한다며 40여 건의 개혁조치를 한꺼번에 쏟아냈다. 집권 1년 내 개혁입법을 마무리짓고, 나머지 임기 동안 효과를 본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과욕이었다. 동시에 다 하려고 욕심을 부리다 보니 뭐 하나 제대로 끝낸 것이 없다. 이것저것 다 손을 대긴 했지만 확실하게 마무리지은 것이 없다. 어정쩡하게 봉합하거나 타협한 것이 대부분이다.

프랑스병의 주범이라며 철폐를 약속했던 주35시간 근로제는 초과근무 수당만 올린 꼴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해고와 고용을 쉽게 하겠다는 공약은 노동계의 반발에 부닥쳐 공약(空約)으로 끝났다. 공공부문 퇴직연금 개혁도 납입 기간을 1년 연장하는 선에서 흉내만 내는 데 그쳤다.

진정으로 그가 개혁을 원했다면 일은 아랫사람에게 맡기고 뒤에서 그들을 따라갔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앞장서서 밀어붙이면 된다고 믿었다. 총리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놓고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개혁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수동적으로 끌려다니기에 바쁜 내각에서 창의와 자율성은 나올 수 없다. 정책 조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곳곳에서 마찰음이 들렸다. 대통령을 도와줘야 할 여당 의원들조차 몸을 사리는 형편이다. 국민의 79%가 지난 1년간 살림살이가 전혀 나아진 게 없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민심 이반은 당연하다.

취임 2개월여 만에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29%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사르코지가 오히려 나은 편이다. 개혁은 대통령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한꺼번에 다 할 수도 없다. 우선순위를 정해 가장 중요한 것부터 힘을 집중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필요하면 설득을 해야 하고, 아랫사람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대통령이 억지로 끌고 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큰 정치를 하라고 대통령을 뽑았지, 공무원이 할 일까지 대신하라고 뽑지 않았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