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축구부 버스 몰던 아버지 잉글랜드 데뷔골 순간 떠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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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버밍엄 중심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김두현. [사진=최원창 기자]

5일(한국시간) 잉글랜드 버밍엄 중심가에서 만난 김두현(26·웨스트 브로미치)은 아버지 김일동(49)씨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전날 퀸스 파크 레인저스(QPR)와의 잉글랜드 챔피언십리그(2부) 최종전에서 데뷔골이자 우승을 확정 짓는 결승골을 뽑아낸 김두현은 “그날이 아버지 생신이었다”고 했다. “골을 넣고 우승컵을 손에 드니 아버지가 생각났다. 좋은 생신 선물을 드린 것 같아 정말 기쁘다”는 그에게서 애틋한 효심이 느껴졌다.

김두현은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아리다. 통진종고 시절 축구부 버스를 몰며 고생하던 아버지였다. 당시 고속버스를 운전하던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두다 보니 김두현은 축구부 회비를 못 낼 때가 많았다. 아들이 의기소침하자 아버지는 축구부를 찾아가 버스 기사를 자청했다. 몸으로 때워 아들의 회비를 대신했던 것이다. 김두현은 “경기 후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더니 너무너무 기뻐하셨다. 이제야 아들 노릇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무덤덤한 동료와 달리 따뜻하게 조언해 준 헝가리 출신의 졸탄 게라(29)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합숙 때 한방을 쓰는 게라는 “4년 전 영국에 왔을 때 나도 영어 한마디 못했다. 시간과의 싸움이니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라”고 충고했고, 김두현은 큰 힘을 얻었다고 한다. QPR전에서 김두현의 헤딩골을 어시스트한 이도 게라였다. 김두현은 “게라에게 볼이 가는 순간 내게 패스할 것 같아 마음 먹고 기다렸다”고 골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경기를 마치자 토니 모브레이 감독이 내 어깨를 툭 치며 ‘좋았어. 잘된 일이야’라고 칭찬해 줬다”고 어깨를 으쓱했다.

올 1월 웨스트 브로미치로 임대된 김두현은 이날 전까지 7경기(선발 1경기)에 나섰을 뿐 뚜렷한 기회를 잡지 못했다. 5경기를 건너뛰고 리그 최종전에 출전한 그는 보란 듯이 골을 뽑아냈다. 구단 이사회는 조만간 그의 재계약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사회 결정이 나면 그는 한국인 5호 프리미어리거로 이름을 올리며 2010년 5월까지 이곳에서 뛸 수 있다.

한 달 전부터 버밍엄에서 함께 지내는 아내 정혜원씨는 임신 7개월째다. 그는 “아이가 태어나는 8월이면 프리미어리그 새 시즌이 시작된다. 아이에게 당당하게 아빠가 프리미어리그에서 뛴다고 말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버밍엄=최원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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