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체험 놀이터 공간이 된 미술관. 양떼가 그려진 벽면을 보고 걸어가며 숨은 그림 찾기 놀이를 할 수 있다.
“와, 컬러 똥이다!”
아이들이 흥분해서 재잘거린다. 빨갛고 파랗고 반짝거리는 ‘똥’ 무더기들을 만져보며 신이 났다. ‘예술적인 똥 이야기’라는 뜻의 ‘분예기’다. 작가 정진아씨가 “예쁜 똥 ‘향기’를 상상해 봐” 하고 주문하자, 아들 박성빈(8) 군은 코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닌다. 가장 큰 ‘똥’ 앞에서는 “우리 둘이 함께 쌌다”며 연신 ‘똥 누는 포즈’를 취해 엄마를 웃겼다.
서울 안국동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관은 내 친구’전(11일까지)에서는 이처럼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오감을 모두 사용해 미술 작품과 어울려 놀 수 있다. 작품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맘껏 상상력을 넓힐 수 있는 기회다. 작품 ‘양, 날다’는 벽면 가득 ‘날아다니는’ 나무양떼 속에서 눈사람이나 아이스크림 등을 찾도록 설치됐다. ‘숨은 그림 찾기’를 하며 벽면을 따라 달려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몽글몽글한 목화 솜으로 만든 양떼도 있다. 제목이 ‘불면증’이다. 한 마리, 두 마리 세다 보면 잠이 솔솔 올 것 같다. 엄마와 함께 전시장을 찾은 신주용(8) 군은 “집에 데려가서 껴안고 자고 싶다”며 즐거워했다.
나비 날개를 단 펭귄이나 마늘 껍질 속 오렌지도 동심을 사로잡는다. 서로 다른 것들이 섞이면 어떻게 될지 이야기해 봐도 좋겠다. ‘나만의 향기’를 만들거나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푸드 스타일리스트이기도 한 오정미 작가는 고추장으로 그린 작품을 냈다. 이해력이 조금 더 높은 연령대라면 ‘미디어 터치터치’ 관에 들러볼 만 하다. 최첨단 비디오아트를 체험할 수 있다.
‘2008 뮤지엄 페스티벌-예술체험 그리고 놀이’의 레퍼토리는 다양하다. 사립미술관협회 산하 미술관들은 5월 내내 자체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미술과 연극, 미술과 영화, 미술과 문학 등 다양한 접목이 시도된다. 또 이달부터 전국 국립미술관과 박물관도 무료 관람에 들어간다. 가족 눈높이에 맞춘 행사를 준비한 곳도 많다. 평소 멀어 보였던 박물관이 훨씬 친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표 참조>표>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 공동회장은 “미술관은 감성을 기른다는 면에서 엔터테인먼트와 겨룰 수 있다”며 “미술시장은 커지는데 정작 감상교육은 부족하다. 미술관들이 해야 할 몫”이라고 강조했다.
◇그림 ‘밖’ 지식보다 그림 ‘안’ 감성= 우리 부모들은 아이를 데리고 미술관에 가는 건 어쩐지 부담스러워 한다. 이것저것 묻는 아이에게 대답이 궁색해서다. 또 아이들에게 무언가 많은 것을 가르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지식 습득보다 감성 개발이다. 어린이 미술관 ‘헬로우 뮤지움’의 김이삭 관장은 “부모들이 그림 자체가 아니라 그림을 둘러싼 정보와 지식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 대화는 인터넷이나 도록을 통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림과 친숙해지는 가장 손 쉬운 요령은 부모가 그림 안의 특정 요소를 찾아서 아이와 얘기를 하는 것이다. 김 관장은 “‘그림 속 카페트가 우리 하은이 방 카페트랑 뭐가 다르니?’ ‘엄마랑 여행 갔을 때 봤던 카페트가 생각나지?’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라”고 조언했다.
환기미술관 에듀케이터 김경희씨도 “미술을 어려워하거나 겁내지 말고 부모도 아이들과 함께 감성교육을 받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일단 즐겨야 관심이 생기고, 지식도 쌓이는 법이다.
글=이진주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