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나들이 … ‘그림 같은 어린이 날’만드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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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체험 놀이터 공간이 된 미술관. 양떼가 그려진 벽면을 보고 걸어가며 숨은 그림 찾기 놀이를 할 수 있다.

5월 ‘가정의 달’이다. 게임기 사달라, 밖에 나가 놀자, 이리저리 보채는 아이들이 많다. 백화점이나 놀이공원에서 ‘ 의무방어전’을 치르느라 몸살을 앓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색다른 체험을 바란다면 미술관으로 눈을 돌려보자. 요즘 미술관들은 팔짱 끼고 보는 엄숙한 전시공간을 넘어 체험놀이터로 변신하고 있다. 전국 57개 사립미술관이 모인 한국사립미술관협회는 ‘2008 뮤지엄 페스티벌-예술체험 그리고 놀이’를 기획했다. 5월 한 달 동안 전국 36개 사립미술관에서 맞춤형 전시를 연다. 지역 미술관 중엔 나들이 코스로도 좋은 곳이 많다.

“와, 컬러 똥이다!”

아이들이 흥분해서 재잘거린다. 빨갛고 파랗고 반짝거리는 ‘똥’ 무더기들을 만져보며 신이 났다. ‘예술적인 똥 이야기’라는 뜻의 ‘분예기’다. 작가 정진아씨가 “예쁜 똥 ‘향기’를 상상해 봐” 하고 주문하자, 아들 박성빈(8) 군은 코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닌다. 가장 큰 ‘똥’ 앞에서는 “우리 둘이 함께 쌌다”며 연신 ‘똥 누는 포즈’를 취해 엄마를 웃겼다.

서울 안국동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관은 내 친구’전(11일까지)에서는 이처럼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오감을 모두 사용해 미술 작품과 어울려 놀 수 있다. 작품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맘껏 상상력을 넓힐 수 있는 기회다. 작품 ‘양, 날다’는 벽면 가득 ‘날아다니는’ 나무양떼 속에서 눈사람이나 아이스크림 등을 찾도록 설치됐다. ‘숨은 그림 찾기’를 하며 벽면을 따라 달려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몽글몽글한 목화 솜으로 만든 양떼도 있다. 제목이 ‘불면증’이다. 한 마리, 두 마리 세다 보면 잠이 솔솔 올 것 같다. 엄마와 함께 전시장을 찾은 신주용(8) 군은 “집에 데려가서 껴안고 자고 싶다”며 즐거워했다.

나비 날개를 단 펭귄이나 마늘 껍질 속 오렌지도 동심을 사로잡는다. 서로 다른 것들이 섞이면 어떻게 될지 이야기해 봐도 좋겠다. ‘나만의 향기’를 만들거나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푸드 스타일리스트이기도 한 오정미 작가는 고추장으로 그린 작품을 냈다. 이해력이 조금 더 높은 연령대라면 ‘미디어 터치터치’ 관에 들러볼 만 하다. 최첨단 비디오아트를 체험할 수 있다.

‘2008 뮤지엄 페스티벌-예술체험 그리고 놀이’의 레퍼토리는 다양하다. 사립미술관협회 산하 미술관들은 5월 내내 자체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미술과 연극, 미술과 영화, 미술과 문학 등 다양한 접목이 시도된다. 또 이달부터 전국 국립미술관과 박물관도 무료 관람에 들어간다. 가족 눈높이에 맞춘 행사를 준비한 곳도 많다. 평소 멀어 보였던 박물관이 훨씬 친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표 참조>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 공동회장은 “미술관은 감성을 기른다는 면에서 엔터테인먼트와 겨룰 수 있다”며 “미술시장은 커지는데 정작 감상교육은 부족하다. 미술관들이 해야 할 몫”이라고 강조했다.

◇그림 ‘밖’ 지식보다 그림 ‘안’ 감성= 우리 부모들은 아이를 데리고 미술관에 가는 건 어쩐지 부담스러워 한다. 이것저것 묻는 아이에게 대답이 궁색해서다. 또 아이들에게 무언가 많은 것을 가르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지식 습득보다 감성 개발이다. 어린이 미술관 ‘헬로우 뮤지움’의 김이삭 관장은 “부모들이 그림 자체가 아니라 그림을 둘러싼 정보와 지식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 대화는 인터넷이나 도록을 통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림과 친숙해지는 가장 손 쉬운 요령은 부모가 그림 안의 특정 요소를 찾아서 아이와 얘기를 하는 것이다. 김 관장은 “‘그림 속 카페트가 우리 하은이 방 카페트랑 뭐가 다르니?’ ‘엄마랑 여행 갔을 때 봤던 카페트가 생각나지?’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라”고 조언했다.

환기미술관 에듀케이터 김경희씨도 “미술을 어려워하거나 겁내지 말고 부모도 아이들과 함께 감성교육을 받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일단 즐겨야 관심이 생기고, 지식도 쌓이는 법이다.

글=이진주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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