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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법 개정안 거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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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97년 초에 김영삼 정부가 12.12 군사반란 및 5.18 내란행위 관련자를 사면하겠다고 발표하자 재야 시민단체는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속해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는 공청회까지 열고 사면권을 어떤 방식으로 제한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 사면권이 역대 대통령에 의해 정치적으로, 그리고 자의적으로 너무 남용됐기 때문에 사법부의 형사판결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고, 사법부의 권위를 존중하고 법원에 의한 형사처벌을 무색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입법청원안까지 만들었다. 당시 토론 과정에서는 법률로 사면권 행사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은 전혀 헌법 위반이 아니며, 사면권을 굳이 대통령에게 부여하지 않아도 되고 의회의 결의에 의해 대통령은 다만 의례적으로 행사하게 하여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하는 의견도 있었다. 그때 정리된 입법청원안을 보면 사면하기에 앞서 대법원장의 의견을 듣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그 뒤 김영삼.김대중 정부로 이어지면서 사면이 한 해에도 취임기념일.석가탄신일.광복절.성탄절 등으로 몇 차례씩 정례화되는 듯이 이뤄지자 정치적 사건, 대형 경제사범뿐 아니라 일반 형사범과 파렴치범에 대해서도 사면 명단에 슬쩍 끼워 넣는 이른바 사면 로비가 일어날 정도까지 됐다.

사면법 개정안을 거부해야 한다는 측은 사면권이 국회에 의해 견제를 받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전례가 없으며, 일반사면까지 국회에 통보하도록 했고, 개정안 자체가 정략적으로 제안됐기 때문에 거부해야 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현재 국회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고 제밥그릇 찾는 데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대통령의 사면에 개입할 자격이 없다는 주장까지 한다.

그러나 일반사면이 특별사면보다 그 영향이 훨씬 크기 때문에 국회 통보절차를 거치는 것은 당연하며, 그 제안 동기가 어떠했든지 간에 현재의 사면법 개정안은 사면절차를 공개하고 투명하게 만드는 매우 훌륭한 법률이다.

이 개정안이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하고 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국회에 대한 통보절차를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통보 과정을 거치면서 사면의 의의, 그 대상과 범위에 대해 국민이 소상하게 알게 될 것이다. 대통령의 사면권이 은밀하게 행해지고 사면 발표에 이르러서야 누가 구체적으로 사면됐는지를 알게 되는 현재와 같은 밀실 결정의 문제점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사전 국회 통보를 통해 사면대상을 공개하자는 것일 뿐이다. 공개의 방법이 대법원장을 거치는 형태가 아니어서 입법 취지가 다소 바래지긴 했지만 국회를 통하는 것도 적당하다고 본다. 사면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닌 사면의 절차와 대상을 공개한다는 의미에서 그 제안의 숨은 의도와 별도로 개정안이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내용에 관계없이 누가 제의했는지에 따라 자기 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헌법에 위반되는지 어떤지를 구체적으로 따지지 않고 거부돼야 한다는 논리는 정말로 위험하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불편부당한 지식인 입장에서 사물을 관찰하고 평가해야 한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 만료 직전(아마도 몇시간 전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칸소주의 변호사이던 동생을 통해 국제 거래를 통한 탈세범과 몇몇 형사범에 대해 전격적인 사면을 단행했다. 변호사이던 그 동생은 그 덕에 수십만달러를 수임료로 챙겼다고 한다. 사면권이 현재의 형태 그대로 유지되는 한 도덕적 절제의 미덕이 사라지고 승리만이 모든 것을 말한다는 논리가 횡행할 수 있다. 이런 논리를 갖고 있거나, 앞으로 등장하게 될 대통령이 클린턴 같은 몰염치한 행위를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사면법 개정안은 거부돼선 안 된다. 그때 가서 후회하면 늦다.

조상희 변호사.전 서울지법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