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초상화로 그려본 문인들의 ‘인생 전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불문학자 김화영 선생의 초상화는 아내 양주혜 씨가 그렸다. 꽉 다문 입매와 미간의 주름, 아내는 남편의 얼굴을 명쾌하게 잡아냈다. (사진①) 화가 김병종씨가 그린 아내인 소설가 정미경 씨의 초상화엔 함께한 지난 세월이 묻어난다. (사진②) 청록파 시인 박두진의 자화상은 조각가인 아들 박영하 씨가 동판으로 만들었다. (사진③)

“얼굴은 개칠할 수 없는 존재의 꽃, 서로 다른 향내를 지녔다.”

정진규 시인은 얼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 정신세계가 드러나는 눈빛이나 본성이 엿보이는 입매는 화장으로도, 성형수술로도 결코 ‘개칠’할 수 없다.

그러면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문인들의 얼굴은 어떨까. 영인문학관이 2일부터 ‘상상력과 현실 사이-초상화와 사진전’을 연다. 서울 평창동 산등성이에서 인근 길가로 신축 개관하고 첫 전시다. 소설가 서영은·조정래·최인호·박범신씨 등 문인의 초상화와 자화상, 사진자료 270여 점이 나왔다. 월간 ‘문학사상’의 표지 인물로 선정됐던 문인을 당대의 화가가 그린 초상화가 주종이다. 문학과 미술의 만남이다.

이야기로 사는 문인들은 얼굴로도 사연을 풀어낸다. 독자들은 한 점의 초상화를 통해 누가 누구를, 왜, 어떻게 그렸는지 보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예컨대 화가 김병종씨는 소설가 정미경씨를 그리고는 “모처럼 앉혀 놓고 보니 신산한 세월의 우수가 지나가는 것이 보여 붓질이 영 착잡하다. 아내여 미안하다”라고 털어놓았다. 아내는 “모처럼 그려준 것도 영 마음에 차지 않는다 했지만 아내 아닌 소설가 아무개를 그렸을 뿐이라니 수긍할 수밖에”라고 했다. 이 핑크빛 초상화엔 소설가-화가 부부의 아기자기한 일상과 애정이 묻어난다.

소설가 권지예씨의 경우 화가 정탁영씨가 그려준 초상화와 함께 자화상이 나란히 걸렸다. 권씨는 초상화에 대해 “다소 연약해 보인다는 나의 실물보다 훨씬 ‘작가적’이다. 의지와 카리스마 넘치는 강인한 작가의 얼굴과 같은 작품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반면 자화상을 놓고는 “그림을 보이기가 못내 부끄럽다”고 털어놨다.

불문학자 김화영씨의 초상화는 부인인 화가 양주혜씨가, 김광섭 시인의 초상화는 사위 남관씨가 그렸다. 시인 박두진씨의 자화상은 조각가인 아들 박영하씨가 동판으로 만들었다.

흔히 ‘훌륭한 초상화는 인생의 전기(傳記)’라고 한다. 전시에선 글로만 만났던 문인들의 내밀한 삶이 엿보인다. 바로 그들의 얼굴을 통해서다.

영인문학관 강인숙 관장은 “얼굴은 영혼의 거울이며 수정할 수 없는 내면의 표현이다. 문인 초상화는 그의 작품세계를 또 다른 형식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특히 문인의 초상화와 사진이 나란히 전시되기 때문에 화가가 그려낸 작가의 아우라를 느껴보는 것도 감상 포인트다. 전시는 6월 15일까지. 02-379-3182.

김진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