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새마을旗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 중반 전국의 관공서를 비롯한 온갖 주요 건물에는 새로운 깃발이 등장했다.초록바탕에 노란색 원,그 안에 돋아난 세잎의 녹색 새싹,이름하여 새마을기(旗)다.이 기는 그 몇 해전 당시 박정희(朴正熙)대통령 이 직접 작사.작곡하고 국립교향악단의 홍연택(洪燕澤)씨가 감수했다는 새마을노래와 함께 전국 방방곡곡 어디에서나 보고 들을 수 있는 새마을운동의 상징이 됐다.
73년 6월 총무처의 현상공모로 만들어진 새마을기는 76년초朴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그 해 5월 총무처가 「국기게양에 관한국민계몽자료」라는 지침을 각급 기관에 내려보내면서 게양이 의무화됐다.한달 뒤에는 다시 내무부가 일반 기업체 건물등에도 새마을기를 회사기와 함께 걸도록 하는 훈령을 내렸다.유신치하의 서슬퍼렇던 시절,이런 「자료」와 「훈령」으로 온 나라가 새마을기로 펄럭였을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새마을기의 격(格)도 거의 태극기와 맞먹게 정해졌다.깃봉이 2개일 때는 오른쪽에 태극기,왼쪽에 새마을기를 달도록 했고 깃봉이 3개일때는 중앙에 태극기,오른쪽에 새마을기,왼쪽에 기관(機關)기를 달도록 규정했다.깃봉이 2개밖에 없던 곳은 기관기나사기(社旗)를 달기 위해선 깃봉 하나를 더 만들어야만 했다.이렇듯 기세당당하던 새마을기는 6共들어 새마을 중앙본부의 비리가터져나오면서 내려질 위기를 맞는 듯하더니 89년 당시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의 지시로 다시 관공 서 게양이 의무화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70년에 시작된 새마을운동이 농촌을 비롯한 우리 사회에 끼친긍정적 효과는 결코 적지 않았다.「잘살아 보세」라는 목표와 「하면 된다」는 신념이 어우러져 일궈낸 성과도 많았다.그러나 사회개혁운동이 이렇듯 관료화되기 시작하면 이는 이 미 변질(變質)된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그 후 새마을운동이 걸어온 길 역시그러했다.
언제부터인가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로 시작되는새마을 노래가 들리지 않더니 이제 서울시가 지자체(地自體)로는처음으로 새마을기를 내리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대신 25개구청의 기를 번갈아 걸 계획이란다.한 시대의 상징이 이렇듯 사라짐에 다소의 감회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잘한 결정이다.새마을운동의 이념자체야 훌륭한 것이지만 그런 이념 역시 국민의 자발적참여에 의해 구현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