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콜레라의 유행과 예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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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무더위가 걷히고 지난 여름 참사의 기억이 가실만하니,또 반갑지 않은 손님이 왔다는 전갈이다.바로 콜레라의 유행이다.유전공학등 첨단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신(神)의 영역까지 넘본다는 현대의학의 마술로도 부처님 시대에도 있었던 이런 원시 적(?)인 질병 하나 해결하지 못하나 하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 병의 근원지는 아마도 갠지스강 유역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 병이 범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초부터이나 대유행을 겪었던 유럽에서는 1925년이후 사라졌다.우리나라에는 그후에도 간헐적으로 유행되었으며,특히 해방직 후 귀환동포에서 발생해 1만명이상의 사망자를 낸 적도 있었다.1961년에 시작된 일곱번째 대유행은 주로 아시아.아프리카및 중남미등 개발도상국이 무대가 되고 있다.
종래의 고전형 콜레라 대신 엘토르형이 주역으로 등장했고,최근에는 또 새로운 혈청형이 나타나 세대교체가 되기도 했다.우리나라에는 1963년부터 약10여년마다 유행됐으나 다행히도 전국적으로 확산되거나 토착병으로 눌러앉는 일은 없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의 유행은 언제나 국외로부터 유입돼 생기는이른바「수입」전염병이라 할 수 있다.예부터 콜레라는 여행자의 병으로 알려져 왔으며 지금도 역시 유행지로의 여행과 교역이 주요 유입통로가 돼있다.
제7차 유행에서 인도.방글라데시.동남아 지역은 물론 지난 1백년동안 콜레라를 모르고 지내던 남미에까지 급속도로 퍼져나간 이유는 무엇일까.항공여행의 발달과 교역의 증가로 이제 국경은 질병에 대한 방패막이의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또 수많은여행객에게 옛날처럼 엄격한 검역을 실시하기 어려워진 현실도 방역을 어렵게 만든 한 요인이다.가난과 정치적 혼란,내란과 난민촌등은 콜레라의 낯익은 동반자다.국민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 없는 나라에서는 언제나 콜레라 유 행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콜레라가 우리나라에 들어 왔다는 사실 자체 때문에 특별히부끄러워 할 이유는 없으며,선진국에서도 이것은 불가피한 일이다.선진국에서는 일단 들어온 콜레라를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최소화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물과 음식(특히 새우.굴.조개등 어패류)을 끓이거나 잘 익혀서 먹도록 하고 설사환자 발생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하지 말아야한다.여러 인접지역에서의 콜레라 발생에 대한 정보의 입수나 교환은 매우 중요하며,세계보건 기구는 중추적 역할 을 맡고 있다.옛말에도「병은 자랑하라」고 했는데 이것을 현대적 용어로 표현한다면 질병에 관한 정보를 공개적으로 신속히 교환하는 것이 질병 퇴치에 중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이번 콜레라 유행지역은 북한의 유행지역과 매우 가깝고,생태학적 환경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크며,질병에는 국경이나 휴전선이 없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 주고있다.우리나라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남북 간에 서로 질병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면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
콜레라는 치료받지 않으면 치사율이 50%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지만 콜레라 치료의 혁명을 가져온 경구 수액요법의 발견으로 현재는 1%이하의 치사율을 보이고 있다.경구수액요법은 극히 간단하고(물.설탕이나 미음.소금.소다.염화칼리)값싼 치료로 어디서나 쉽게 만들어서 마실 수 있고 놀랄 만큼 효과적이다.오지의가난한 수백만명의 생명을 구한 이 간단한 치료법의 발견이야말로어떤 값비싼 첨단 기술보다도 인류에게 더 큰 공헌을 한 것이다.이 고전적인 질병의 퇴치에는 아 마도 현대적 첨단 무기보다는전통적으로 전염병 퇴치의 기본수단인 역학적 방법의 응용이 더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大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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