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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대영박물관서 전시회 가진 조각가 신미경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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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조각가 신미경씨가 대영박물관 중앙홀에 전시 중인 자신의 비누 조각작품을 마무리 손질하고 있다. 작품은 박물관 소장품인 그리스 조각의 몸에 자신의 얼굴을 붙인 것이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조각가 신미경(37)씨가 지난 18~19일 런던의 대영박물관 중앙홀에서 퍼포먼스를 겸한 전시회를 열었다.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이 박물관에서 현대적 아트 퍼포먼스가 개최된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어릴 적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그리스 조각의 아름다움에 반해 이 길을 택했어요. 그러다보니 그리스 조각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주로 하게 됐지요. 마침 대영박물관의 한 큐레이터가 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리스 조각을 활용한 제 작품을 보고 초대를 했습니다. 꿈도 못꿨던 일이 너무 쉽게 이뤄졌어요."

신씨는 대영박물관 중앙홀 한쪽에 작업실을 차려놓고 이틀간 '웅크리고 앉은 비너스' 등의 비누 조각을 빚었다.

'그리스 소녀의 토르소'에다 자신의 두상(頭像)을 갖다붙인 작품도 만들었다.

그의 작품은 그리스 조각을 자기 식으로 재해석해 변용하는 '트랜슬레이션(Translation)'이다. 소재는 모두 비누다. 작가는 어린 시절 대리석을 떠올릴 때마다 '부드럽고 매끄럽고 향기로운' 비누를 느꼈고, 결국 1995년 영국 유학과 함께 비누 조각에 빠져들게 됐다고 한다.

"한국에선 그리스 조각을 그대로 모각(模刻)하는 작업이 바로 공부잖아요. 그렇게 하다가 영국에 와보니까 그런 식의 공부는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한국서 배운 것과 여기서 강조하는 독창성을 모두 살리는 방법을 생각해냈지요."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유학 시절 신씨는 대학 본관 건물 안에 있는 존 플랙스만의 대리석 여인상 옆에 작업대를 설치하고 6개월에 걸쳐 비누로 모각을 했다.

대학 측의 주선으로 레버브로라는 비누회사에서 재료를 기증받았다. 여인상의 피부는 살색, 머리카락은 금발, 그리고 몸을 휘감은 비단천은 투명비누로 만들었다. 화제가 됐다.

덕분에 몇차례 공모전에 당선했고, 지금은 모교에서 강사로 일하는 프리랜서 작가가 됐다.

이번에 퍼포먼스를 하는 동안에도 초청 의사를 밝히는 큐레이터가 몇 사람 있었다.

일이 끊이지 않으면서 한국에 있는 조각가 남편(김종구.41) .외아들(9)과의 이별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다고 신씨는 말했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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