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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한다고 南美 간 의원들 ‘마추픽추’ 관광은 필수 코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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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2004년 8월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의원 6명이 남미의 페루를 방문했다. 이 나라의 환경ㆍ노동 분야 정책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5개월 뒤인 2005년 1월엔 정무위 소속 의원 5명이 페루의 금융감독 정책의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 비슷한 시기 정보위 국회의원들이 정보기관과의 교류를 위해 이 나라를 찾았다. 그 며칠 전엔 운영위 소속 의원 4명이 ‘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을 맞아 한국인의 자긍심을 심어주려고’ 출장을 갔다가 페루를 거쳐 왔다.

4개월 뒤엔 건설교통위 소속 의원 6명이 남미의 건설업 현황과 주요 도시 교통체계 연구를 위해 페루에 머물렀고, 그해 8월엔 한국과 파라과이의 친선을 도모하려는 의원들이 페루를 들렀다. 지난해 1월엔 평창 겨울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이 페루를 찾았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국가에 이처럼 각별한 관심을 보인 이유는 환경ㆍ노동ㆍ금융ㆍ정보ㆍ건설ㆍ교통ㆍ스포츠 교류 증진 등 다양하다. 그러나 공통점은 이 나라의 유명 관광지 ‘마추픽추’에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다. 의원 중 상당수는 인근 브라질에 있는 ‘이과수 폭포’ 투어를 곁들였다. 당시 페루를 다녀온 한 의원은 “관광지를 여러 곳 다니다 보니 거의 매일 비행기를 타야 했고, 이 때문에 무척 피곤했다”고 회상했다.

국민의 세금을 100억원 넘게 쓴 17대 국회의원 외교의 한 단면이다. 의원 한 팀이 외국을 방문하는 데 들어가는 예산은 7000만원 이상으로, 1억원을 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본지 취재팀이 국회사무처에 정보 공개를 청구해 확인한 내용이다.

한국 의원들이 가장 활발하게 외교활동에 나선 이집트ㆍ그리스ㆍ노르웨이ㆍ터키 등을 다녀오며 제출한 증빙서류에서는 현지 관광차량 렌트비, 가이드비, 크루즈 승선료, 관광지 입장료 등도 들어 있다. 국회의원이 현지 공관이나 상사에게 건넨 격려금, 여행 비품 구입비, 교민과의 만찬 비용 역시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갔다.

의원 외교활동의 성과물인 ‘결과 보고서’는 비밀서류만큼이나 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정보공개를 청구해 어렵사리 열람한 보고서에는 ‘국제전화 거는 법: 001 또는 002+국가번호+지역번호+가입자번호’ 같은 내용이 들어 있는가 하면, 일부는 예전의 보고서와 토씨까지 똑같다.

이 같은 의원들의 외교활동에 현지 반응도 좋지 않다. 한 무역상사 관계자는 “의원들의 일정이 길어지는 바람에 현지 상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만찬을 위해 40분이나 기다린 적도 있다”며 “의원들이 국민 세금으로 그런 활동을 한다는 게 아깝다”고 밝혔다. 한 전직 대사는 “1년에 5∼6번씩 오니까 장관 만날 것을 차관 만나고, 상임위원장 만날 것은 일반 의원으로 격이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국회사무처 육동인 공보관은 “방문국을 2개국 이상 넘지 못하게 하고, 하루 한 개 이상 공식 일정이 있어야 하며 한 번에 6박8일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등 ‘국회의원 외교활동 규정’을 마련해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 17대 국회의원 외교활동을 분석한 결과 의원외교를 명분으로 단골로 찾는 해외의 관광 명소들.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①페루 잉카 유적지인 마추픽추 ②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터키 보스포루스 해협의 크루즈 ③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④브라질·파라과이·아르헨티나 3개국 국경에 걸쳐 있는 이과수 폭포.

특별취재팀 j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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