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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를 위해 모험 즐긴 아랍의 ‘상인 정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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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36면

왕이 천일 동안 이야기를 들려준 샤라자드에게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영국 화가 아서 보이드 휴턴(1836~75)의 목판화.

17. ‘선원 신드바드와 짐꾼 신드바드’

‘선원 신드바드와 짐꾼 신드바드’는 『천일야화(千一夜話)』, 일명『아라비안나이트』에 포함된 유명한 이야기다.

잘 알려진 대로 『천일야화』의 전체 틀은 샤라자드라는 현명한 여인이 샤리야르 왕에게 천일 하고도 하룻밤 동안 들려주는 이야기 모음으로 되어 있다. 사냥하러 왕궁을 떠나 있는 동안 왕비와 후궁들이 노예들과 음탕한 짓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왕은 이들을 모두 참살하고 나서 매일 밤 처녀를 불러다가 잠자리를 같이하고는 이튿날 아침에 목을 베어 죽여 버림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이런 일이 3년 동안 계속되자 마침내 백성은 국왕을 저주하고 현왕의 치세가 끝나게 해 달라고 알라께 빌었다. 드디어 처녀를 찾아와야 하는 대신이 아무리 돌아다녀도 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이 대신에게는 샤라자드(‘도성의 해방자’라는 뜻)와 두냐자드(‘세계의 해방자’라는 뜻)라는 두 딸이 있었는데, 샤라자드는 근심에 빠진 아버지에게 자신이 직접 왕에게 가겠다고 나서고, 동생 두냐자드에게 일러 밤에 왕궁으로 찾아와 자기에게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하도록 했다.

『천일야화』는 아랍어로 쓰인 설화집으로 인도, 페르시아,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한 옛 이야기들에 후대 아라비아 이야기들이 더해져 180편으로 이루어졌으며, 여기에 짧은 이야기 100편 정도가 덧붙여져 있다. 이 설화집은 18세기에 프랑스 학자 앙투안 갈랑(Antoine Galland·1646~1715·왼쪽)의 프랑스어 번역본이 나오면서 외부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졌고, 19세기 영국의 모험가이자 동양학자인 버튼(Sir Richard Francis Burton·1821~1890·오른쪽)의 영어본이 나온 후 전 세계에 널리 읽히게 되었다.

샤라자드는 매일 밤 왕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되 일부러 이야기를 끝마치지 않음으로써 왕이 다음날 밤에 이야기를 마저 듣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만들었다. 마침내 왕의 잔혹한 광기(狂氣)는 ‘문학의 힘’에 의해 순화되었고, 두 자매는 왕 및 그 동생과 결혼한다.

‘선원 신드바드와 짐꾼 신드바드’는 538일째 밤에 시작되어 566일째 밤까지 계속되는 ‘천일야화’의 133번째 이야기다.
한 가난한 짐꾼이 어느 부잣집 앞에서 자신의 불운한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를 하자 집주인이 노래를 듣고 그를 안으로 불러들인다. 이름을 물어 보니 마침 짐꾼이나 부자나 모두 신드바드였다. 선원 신드바드는 많은 고생을 하고 위험을 극복한 끝에 부자가 되었다며 모두 일곱 번에 걸친 자신의 항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방탕한 생활을 하느라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큰 재산을 모두 날리고 난 후 이를 만회하기 위해 배를 타고 외국에 나가 무역을 한다. 매번 모험담의 구조는 유사하다.

배가 난파하여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어느 섬에 상륙한 다음 환상적인 모험을 한 끝에 큰 부를 얻는다. 그리하여 바그다드로 되돌아와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모험에 대한 욕구가 끓어올라 다시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그가 들려주는 이 모험담은 아마도 세계 최고 수준 상상력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첫 번째 모험에서는 항해 중 사람들이 잠깐 어떤 섬에 올라가 불을 피웠는데, 알고 보니 이것은 섬이 아니라 큰 물고기로 오랫동안 등 위에 모래가 쌓이고 나무가 자라 섬처럼 보였던 것이다. 사람들이 불을 피우자 이 물고기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신드바드는 바다에 빠졌다가 낯선 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그는 바닷속에 사는 말(海馬)의 씨를 받는 일을 해주고 그 대가로 돈을 벌어 인도를 거쳐 귀국한다. 두 번째 모험에서는 코끼리를 잡아다가 새끼에게 먹일 정도로 거대한 새 로크(roc)가 나온다.

신드바드는 다이아몬드가 많이 나는 계곡에 떨어졌으나, 큰 고깃덩어리에 몸을 숨겨 큰 새가 그 고기를 자기 둥지로 가져가는 것을 이용해 탈출한다. 세 번째 모험에서는 “눈은 불길처럼 무섭게 빛나고 송곳니는 멧돼지 어금니 같으며 낙타와 같은 길쭉한 입술을 가슴까지 늘어뜨리고 있고 거룻배만 한 귀는 어깨를 덮고 있는” 괴물이 등장하여 선원들을 잡아먹는다. 이 괴물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를 연상시키는데, 과연 신드바드는 오디세우스가 그랬듯이 쇠꼬챙이를 불에 달구어 괴물의 눈을 찌른 다음 도망간다.

그 다음 번 모험들에서는 부부 중 한쪽이 죽으면 남은 사람을 순장하는 관습 때문에 시체와 함께 지하 동굴에 갇혔다가 가까스로 탈출하는 이야기, 사람을 속여 자신을 업도록 한 다음에는 절대 떨어지지 않고 발로 차며 노예처럼 부려먹는 ‘바다의 노인’ 이야기(신드바드가 이런 불행한 상태에 빠지지만 술을 먹여 노인을 땅에 떨어뜨린 다음 잔인하게 죽이고 도망친다), 사나운 원숭이에게 돌을 던지면 원숭이들이 코코아 열매를 던지는데 이것을 모아 장사를 하여 돈을 번 이야기, 강에는 다이아몬드가 굴러다니고 골짜기에서는 진주가 나는 사란디브(실론을 가리킨다) 이야기 등이 전개된다.

마지막 일곱 번째 모험은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환상적인 성격이 강하다. 이번에도 역시 신드바드는 배가 난파한 후 뗏목을 타고 흘러가다가 어떤 먼 나라에 도착했는데 이곳에서 어느 노인의 호의로 사업을 하게 되고 또 그의 딸과 결혼까지 한다. 그런데 이 도시의 남자들은 매월 초순에는 얼굴과 온몸이 새로 변하여 하늘로 날아간다. 신드바드는 그중 한 사람에게 부탁해 그의 등에 타서 하늘 끝까지 올라가 본다. 그곳에서 천국의 신을 찬미하는 천사들의 음성을 듣고 신드바드는 “알라신을 찬양하노라” 하는 문구를 입 밖에 냈는데 그러자 갑자기 하늘 한쪽에서 불길이 치솟아 일행 대부분이 불에 타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를 저주하며 도망쳤다.

알고 보니 이 도시 사람들은―그가 결혼한 집 사람들만 빼고―‘악마의 일족’, 다시 말해 이슬람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27년에 걸친 마지막 여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신드바드는 이제 더 이상 바다로 나가는 것을 그만두고 바그다드에 정착해 살기로 한다.

‘신드바드’는 원래 중동 지역과 인도, 페르시아, 고대 그리스 세계에 널리 퍼져 있던 고대의 시가들을 바탕으로 해서 지어졌다. 세계를 방랑하다가 고향으로 귀환하는 구성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기본 틀은 이처럼 오래된 문학 전통에서 차용한 것이라 해도 이야기의 구성 요소들은 많은 부분 인도양 상업 세계의 현실에서 길어온 것들이다. 그래서 환상적인 내용 이면에 실제 상인들의 활동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말·진주·장뇌·정향·생강·후추·용연향·코코넛 등 중동 지역과 동남아시아·아프리카에서 나는 이국적인 상품들이 거래된다. 인도양 세계의 특징은 문화와 종교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서로 평화롭게 거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 상인과 힌두교를 믿는 인도 상인, 혹은 유교를 믿는 중국 상인 간에 교역이 가능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악마의 일족’이라 생각하고 또 다른 나라의 관습이 야만적이고 신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욕하면서도 어쨌든 서로 만나고 장사를 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 것이다. 아랍 상인은 동남아시아를 넘어 중국의 큰 항구 도시에까지 들어와 교역을 했으며, 그래서 예컨대 츠퉁(刺桐·오늘날 푸젠성의 취안저우) 같은 곳에는 수많은 아랍 상인이 몰려 사는 거류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슬람교를 창시한 마호메트가 상인 출신이어서 그런지 이슬람권에서는 상업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이 작품에서도 천신만고 끝에 큰돈을 모은 상인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짐꾼 신드바드가 자신의 가난함을 한탄하며 “이 몸의 운명은 기구하기도 해라/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일 뿐이네/ 하지만 이 세상엔 복이 많아서/ 불행을 모르는 사람도 많이 있도다” 하는 노래를 한 데 대해 선원 신드바드는 “고생 끝에 출세를 하여/ 이름을 떨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밤잠도 제대로 자지 않는다/ 진주를 가지고 싶으면/ 바닷속 깊이 들어가서/ 열심히 찾아야/ 비로소 보물이 손에 들어온다”는 노래를 들려주지 않는가. 실제 신드바드는 매번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여러 이민족과 아울려 장사를 하여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다시 ‘알라의 못(바다)’으로 나간다. 그렇지만 부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나 방탕한 생활은 악마의 유혹에 빠진 것으로 비난받으며, 따라서 큰돈을 벌어 귀향한 주인공은 언제나 가난한 과부와 고아들에게 보시를 한다.

이상적으로 말해 선원 신드바드의 용기와 짐꾼 신드바드의 소박한 절제심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가난하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우리 영혼이 돈에 내몰리지도 않는 행복한 삶이 가능하리라는 것이 현명한 여인 샤라자드가 뜻하는 바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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