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1분기 실적 … 반도체는 세계 업체 중 유일한 흑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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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삼성전자라는 감탄이 나올 만하다. 올 1분기 예상을 웃도는 영업이익을 거뒀기 때문만은 아니다. 3대 주력 제품인 반도체·LCD·휴대전화 모두 세계 시장에서 주도권을 더 단단하게 다졌다. 하반기 이후 더 좋은 실적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다.

외견상 휴대전화의 약진이 돋보인다. 4630만 대를 팔아 매출의 16.5%를 이익으로 남겼다. 3위인 모토로라(2740만 대)를 멀찌감치 따돌리며 선두 노키아(1억1550만 대)와의 격차를 조금씩 좁히고 있다. 노키아의 판매량이 크게 줄면서 지난해 4분기 9000만 대이던 판매량 격차가 7000만 대 수준으로 줄었다. LCD도 여전히 호조다. 매출은 대만 AUO보다 1500억원 정도 적었지만 영업이익은 근소한 차로 앞섰다. 영업이익률도 23%로 AUO와 LG디스플레이를 1%포인트 차이로 제쳤다. 선진국 수요가 주춤하는 것이 문제지만 올림픽 등 중국 특수를 앞두고 있어 좋은 실적이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선방한 분야가 반도체다. 영업이익은 1900억원에 그쳤지만 D램 값 하락에 시달리는 세계 반도체 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를 냈다. 일본 도시바는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적자를 낸 것으로 집계됐고, 대만 최대 D램 업체인 파워칩은 3300억원 넘는 손해를 봤다. 미국 마이크론도 2분기(2007년 12월~2008년 2월) 적자가 7억7200만 달러(약 7700억원)에 달했다.

삼성전자는 모바일 D램, 그래픽 D램 등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 비중이 높은 데다 생산성 높은 미세공정을 먼저 도입해 가격경쟁력을 유지했다. 이날 “올해 D램 공급 물량을 지난해의 두 배로 늘리겠다”고 공언할 만큼 공격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이닉스가 설비투자 1조원을 줄이겠다고 밝힌 것과 대조적이다. 경쟁 기업이 먼저 쓰러질 때까지 투자를 줄이지 않는 ‘치킨게임’에서 삼성전자가 승기를 잡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실적 호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주우식(IR 팀장) 삼성전자 부사장은 “2분기에는 베이징 올림픽 마케팅 비용 증가 등으로 실적이 1분기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겠지만 3분기 이후에는 확실한 상승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장기적으로 성장세를 이어 갈 수 있느냐는 점이다. 현재 주력 제품 분야에서 주도권은 잡았지만 앞으로 전문경영인 체제에서도 이를 유지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 줘야 한다. 회사가 이건희 회장 퇴진 후에도 몇 년씩 적자를 감수하고 꾸준히 투자하는 ‘뚝심’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변수인 셈이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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