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사람, 그대 이름은 CEO니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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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고객사의 경영진 회의에 참석했다. 프로젝트 결과 보고는 여러 안건 중에 하나였다. 당시의 고객사 CEO는 현장 경영, 감성 경영, 신뢰 경영, 원칙 중심의 경영을 강조하는 분이었다. 이를 위해 직접 현장을 방문하는 빈도가 높았다. 일선 직원과의 대화도 많이 가졌다. 직원들의 고충을 직접 챙기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숙고 끝에 수립한 원칙은 탱크처럼 밀어붙였다. 이런 일관된 정책과 행동으로 인해 직원 사이에서는 온화하고 합리적이라는 평이 있었으며 큰 신임을 받는 분이셨다. 따라서 내심 안심하고 발표 준비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이게 왠걸. 그런 CEO의 모습을 최고 경영 회의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최고 경영 회의가 시작되자 마자 담당 임원들에 대한 속사포식 질책이 이루어진다. 성과 부진 이유를 묻는다. 앞으로의 대책을 어떻게 수립할 것인지를 따진다. 전체적인 경영 회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차가웠다. 아니 차가운 것을 넘어 살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M으로서 프로젝트 결과 보고를 어떻게 진행했는지 하도 긴장해서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이다. 새로운 경험이었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경영 회의였다.
이후 며칠이 지나 그 CEO와 함께 차를 마시며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최고 경영 회의에서의 사장님 스타일은 솔직히 의외였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요?”
답이 명문이다. “아… 고압적 스타일을 말씀하시는 거죠? 의도적으로 그러는 겁니다. 채찍질과 토닥거림의 양다리 걸치기 작전입니다. 밀고 당기기의 미학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죠. 저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비추어지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카멜레온이거든요.”

본 사례에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 본 것이 있다면 ‘CEO는 두 얼굴의 사람이다. 아니 천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인격적인 면에서는 다소 부정적일 수 있는 표현이다. 스타일 관련해서도 반가운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의미, 이유, 내면을 살펴보면 하나의 정교한 경영 도구로 느껴진다. 한 사람으로서의 CEO 개인적인 스타일에 대한 희생 정신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누가 자신의 인격 및 스타일에 있어서 ‘이중적이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겠는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CEO는 남들이 회피하는 바로 그 DIRTY JOB을 자처한다. 자신의 이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직의 생존과 발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CEO의 소임이다. CEO는 빛나고 조직은 색이 바래는 형국이라면 그 CEO는 기본 역할 수행이 미흡한 최악의 CEO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신문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볼 수 있는 화사한 웃음 뒤에는 엄정한 성과주의에 기초한 신상필벌이 숨어 있다. 고객사와 주요 계약을 타결하는 자리에서의 악수 뒤에는 그 동안의 치밀한 분석/계산/협상/전략의 땀방울이 맺혀 있다. 직원들과 온화하게 대화할 때의 모습 뒤에는 따끔한 코칭 및 채찍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중견기업에 대한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의 일이다. 그 기업은 그리 크지 않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슈가 발생하여 CEO가 고객사에 직접 불려 들어갔다. 같이 갔다 온 팀장이 회사에 들어와서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내용을 확인해 보니 고객사의 담당자와 논의하는 중에 CEO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 잘못했다, 앞으로 철저히 개선하도록 하겠다, 해당 직원들을 엄중 문책 경고하겠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단지 고개를 숙인 것을 넘어 비굴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 팀장은 담당 직원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있을 것이 염려되었고, 고객사 담당자 앞에서 비참하고도 비굴한 상황을 몸소 겪은 CEO의 불 같은 화풀이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해당 프로젝트 담당자에게 보인 CEO의 반응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해당 프로젝트 담당자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칭찬을 했다는 것이다. 고객사 담당자의 비상식적, 비계획적 요구 사항을 충족시켜주면서 이 정도의 이슈밖에 생기지 않은 것은 엄청난 내공과 인내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후 프로젝트 담당자 및 사내 임직원들의 CEO에 대한 신뢰는 거의 절대적, 맹목적인 수준에 이르렀다는 후문이 있다.
이후 프로젝트 진행 상황 보고를 위해 그 CEO를 뵌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위 사례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고객사 앞에서 비굴하게 행동하여 비즈니스가 잘 될 수만 있다면 천 번 만 번이라도 비굴하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허허허. 직원을 문책해서 일이 해결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면 역시 천 번 만 번 문책했을 것입니다. 허나 그 방법은 그때 상황에서는 오히려 일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생각했었죠.”
이 경우에서 볼 수 있는 CEO의 특징 역시 기본적으로는 ‘두 얼굴의 사람’이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대상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반응이 정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두 얼굴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CEO는 컨설턴트의 입장에서는 그리 권장하지 않는 이미지다. 고객에 대한, 직원에 대한, 주주에 대한 CEO 이미지와 과거, 현재, 미래의 CEO 이미지는 일관성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컨설턴트는 말한다. 특정 시점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자 유형에 따라 상충되지 않는 말을 하는 공간적 일관성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충되지 않는 말을 하는 시간적 일관성 모두 견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공간적 일관성이 유지되어야 신뢰가 형성되고 경영이 원만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원칙론적인 관점에서는 컨설턴트의 주장은 매우 합리적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방법론적인 관점에서 CEO는 두 얼굴의 모습을 지니면서 신뢰를 형성하고 경영을 원만하게 수행하기도 한다. 비일관성의 일관성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일종의 역설이다.

조인스닷컴(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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