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1945(5)「동아문예부흥의 역사적 거보,즉 문화상의 대동아전쟁은 이리하여 무력상의 대동아전쟁보다 훨씬앞서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벌써 시작된 것이다.그러면 동양은 어떻게 새 문화를 건설할 것인가.동양문화 부흥의 구체적인형 태는 어떠한 것이 될 것인가.새 동양의 수립,동아문화의 출발이 동양적 전통의 회고로 출발할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같은 사람의 글인데도 해가 가면서 그토록 달라지고 있었다.
하긴 모두들 변절을 못해서,그것만이 입신출세에 영달이라고들 믿는 세상에서,무엇을 탓하겠어,잘난 사람들이 오히려 영악해서 탈이지.못할 짓 하는 사람들도 다 그런 사람들이고.
강가에 가 서서 기다리던 춘식이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아이가 그새 잠이 들었나 보았다.업고 있던 명조를 춘식이는 제 옷을 벗어 깔아 눕혀놓고 있었다.속옷이라고 걸친 춘식이 옷에는기운 자국이 여기 저기 듬성듬성했다.
다가서는 은례를 보고 그가 물었다.
『좀 쉬었다 가시지요.』 『그럴래.』 『허기나 면하게,요기도좀 하시고요.』 은례가 피식 소리없이 웃었다.
『강에 들어가 물고기라도 잡자는 거니.요기는 무슨 요기같은 소리….』 『길 떠나는 사람이 준비가 있어야지요.』 춘식이가 부시럭거리며 주먹밥을 꺼내놓았다.은례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건 웬 거니?』 『빈손으로 나오실 게 뻔하기에,누님 기다리는 동안 국밥집에 가서 부탁을 했지요.』 『난 네가 맺힌데 없이 싱겁기만 한 줄 알았는데,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니.』은례가 명조를 내려다보았다.
『염려하지 마세요.업고 오면서 누룽지를 좀 먹였으니까 괜찮을겁니다.어서 누님이나 드세요.저는 괜찮으니까요.』 남이라도 너같기만 하다면야.그런 생각을 하면서 은례는 춘식이가 내미는 주먹밥 보퉁이를 받았다.강물에 손을 씻고 먼 산을 바라보며 앉아두 사람은 우물거리며 주먹밥을 베어물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