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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개혁 CEO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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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금융 공기업인 기업은행의 전 직원은 2005년 12월 돈 잔치를 벌였다. 1인당 62시간분의 시간 외 근무수당을 받은 것이다. 이들이 받은 돈은 총 100억원이다. 1, 2급 간부는 대상이 아닌데도 수당을 받았다. 3급 과장급 이하 직원들도 매월 8시간 한도로 시간 외 수당을 받고 또 수당을 챙겼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기업은행은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2006년 12월 50억원을, 지난해 8월과 12월 200억원을 직원들에게 지급했다. 이를 적발한 감사원의 관계자는 “민간기업 같았으면 이렇게 수당을 주었겠느냐”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해 2월 임명된 김원창 대한석탄공사 사장은 부도가 난 M건설사에 1800억원을 지원한 혐의로 현재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강원도 정선군수 출신인 김 사장은 석탄산업 전문가가 아니다. 그는 공사가 본업과는 거리가 먼 건설사에 투자하는 것을 묵인·방조해 회사 부실을 키웠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공기업의 방만 경영과 비리는 고질병이 된 지 오래다. 이런 난맥상의 뿌리에는 전문성도 없이 자리를 꿰차고, 여기저기 눈치보기에 바쁜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있다. 정권에 줄이 닿거나 공무원으로 있다가 낙하산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노조와 적당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경영이 개선될 리 없다. 노무현 정부 때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은 지방선거에 나갔다 떨어졌다. 그러자 노 정부는 보은 차원에서 그를 건강보험관리공단 이사장에 임명했다. 당시 청와대는 “이 이사장은 치과의사여서 건강보험 분야와 연관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는 취임한 뒤 국민이 바라던 건강보험 개혁은 손도 대지 못했다. 대신 과거에 전 이사장을 폭행했던 노조원들을 대거 복직시키는 등 노조에 끌려다니다 최근 사퇴했다.

강원대 김광수 교수는 “공기업 개혁의 성패는 CEO를 잘 뽑느냐에 달려 있다”며 “약점이 많은 CEO는 노조와 타협할 수밖에 없어 공기업 개혁은 꿈도 꿀 수 없다”고 말했다. 숭실대 오철호 교수는 “공기업 개혁의 가장 좋은 방법은 민영화다. 시장에서 경쟁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민영화를 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급한 대로 CEO라도 제대로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과거 정권 때 임명된 공기업 CEO들이 최근 줄줄이 사표를 내거나 사의를 표명했다. 재신임 절차를 밟는 것이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개혁도, 민영화도 본 궤도를 탈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배출되는 낙하산 인사는 배제하고 이명박 정부의 개혁 방향에 맞는 전문가를 기용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검증은 청와대에서 하겠지만 부처가 유능한 사람을 뽑게끔 자율성을 주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런 원칙이 지켜지려면 무엇보다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임원 추천위원회의 심사와 평가를 거치지만 최종 결정은 결국 대통령의 몫이기 때문이다. 과거 정부처럼 가신들 자리 챙겨주기에 여념이 없으면 공기업 개혁은 물 건너간다는 지적이다.

연세대 김정식 교수는 “측근의 자리를 봐주지 말고 민영화 준비를 착실히 할 능력이 있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공기업 CEO에 앉혀야 대통령도 진짜 CEO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윤·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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