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제3당 증후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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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양당제(兩黨制)는 영미(英美)식 정치를 떠받치는 골간이다.영국의 선거는 양대 정당간의 정례 힘겨루기라고 한다.민주.공화 두 정당간의 장군멍군이 미국의 정치다.양당제는 17세기 영국의토리(Tory)와 휘그(Whig)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토리는항상 우익이고 親체제적이다.보수주의 정치이론가 에드먼드 버크의표현대로 우상(偶像)은 바꾸되 우상숭배만은 멈추지 않는다.우상숭배는 곧 현상(現狀)고수다.휘그는 「싸구려 식품을 먹는 시골가난뱅이」를 뜻하는 스코틀랜드 말(Whiggamor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찬밥신세」의 야당을 연상한다.
시대가 바뀌고 제3당이 가끔 잔물결을 이뤄도 이들 양당제의 골간은 요지부동이다.번갈아 장군멍군할 수 있는 「장기판」은 서로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다.차기집권에 대비해 그 정책은 항상 국민대중에게 폭넓게 어필해야 한다.양당제 아래서 극 단적이고 급진적인 정치세력의 등장이 봉쇄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누적된 불신과 불만이 이 전통적 양당제의 근저를흔들고 있다.96년 대통령선거에서 미국국민들의 55%가 민주(클린턴).공화(로버트 돌)두 후보중 택일(擇一)에 반대하고 있다.제3당 창설에 62%가 찬성이다.정치불만을 제3당을 통해 해소하려는 「제3당 증후군」이다.
92년 선거때 유권자들은 16년만에 백악관을 민주당에 넘겨주었다.2년후인 94년 40년만에 의회를 공화당에 넘겨주었다.결과는 실망의 연속이었고 다시 96년 「유권자의 반란」을 벼르고있다.민주당의 중진 빌 브래들리 상원의원은 『정 치는 고장났다』며 재선불출마를 선언했다.무소속의 로스 페로는 기고만장이다.
그러나 그의 대통령 재출마를 원치 않는 유권자들이 2대1의 비율로 많다.페로 자신보다 그의 메시지에 국민들은 위안을 얻고 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그 정치인에 대한 불신은 글로벌한 현상이라고 한다.정보화가 촉진될수록 복잡하고 기술적인 의사(意思)결정에 정치인들의 무력(無力)은 갈수록 두드러진다.제3의 정당이 이 증후군을 달래지 못할 경우 극단주의가 불신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고 영국철학자 에릭 홉스바움은 경고한다.
묵은 정치의 틀에 또 한차례 이합집산으로 한국의 정치는 다시금 4黨정국을 형성했다.「제3의 정치」와는 아랑곳없이 장기판 앞에 다퉈 앉으려는 속보이는 세대교체론이 더욱 웃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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