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외교와 내정 사이의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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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엊그제 첫 해외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명박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두 개의 상반된 그림이 맴돌았을 것이다. 하나는 워싱턴과 뉴욕, 도쿄를 돌며 21세기 한국 외교의 큰 그림을 펼치며 얻은 자신감과 성취감일 것이다. 반면 서울에서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는 국내 정치를 생각하면 복잡하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답답함이 떠올랐을 듯하다. 국제무대에서는 이 대통령의 국제 감각과 활력, 그리고 신장된 국력에 기반한 업그레이드가 가능해 보이는데, 국내 무대에서는 여야 정당이 대통령의 발목만 잡는다는 느낌이 들 법하다.

외교와 내정의 무대에서 전혀 상반된 입지에 처하는 것은(one president, two presidencies) 사실 모든 대통령의 숙명이다. 전문성과 엄청난 양의 정보, 고도의 판단력이 각축하는 외교 무대에는 대통령 이외의 행위자가 끼어들기 쉽지 않다. 대조적으로 내정에서는 야당, 시민단체, 여론뿐만 아니라 여당까지 나서서 대통령에게 비토권을 행사하곤 한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외교력을 갖추었다는 미국의 대통령도 이 같은 딜레마를 피해갈 수는 없다.

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기 불과 며칠 전, 미국 하원의원들은 미국·콜롬비아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비준 표결 자체를 거부하였다. 이로써 자그마한 미·콜롬비아 FTA 비준을 발판으로 더 큰 게임인 한·미 FTA 비준의 탄력을 얻으려 했던 부시 대통령의 구상은 일단 곤경에 빠졌다. 1박2일간 긴 시간을 함께했던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아마도 이런 고충까지 함께 나누었을 수도 있으리라.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가 성공하려면 외교와 내정의 이중성을 탓할 수만은 없다. 국내 정치도 함께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특히 시급한 것은 대통령과 여당 사이에 생산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전임 노무현 대통령의 쓰라린 경험이 보여준 바와 같이,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는 더 이상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다. 이제는 상호 견제와 협력이 반복되는 동반자 관계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여당과 별다른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대연정을 제안하였을 때, 열린우리당의 반응은 싸늘하였다. 소모적인 불협화음만 높아졌을 뿐 가시적 성과는 전무하였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 협정을 성사시켰지만 열린우리당 내의 반(反) FTA 세력을 설득하는 노력은 미미하였다. 결국 국회 다수 의석을 쥐고 있던 여당은 한·미 FTA 비준이라는 선물을 끝내 노 대통령에게 안겨주지 않았다.

본래 대통령과 (여당)의원들의 관심, 배경, 목표는 쉽사리 일치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전 국민을 상대하는 국가 지도자지만, 의원들의 일차적 관심은 자신의 지역구에 쏠려 있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 단임이지만, 의원들은 4년 후의 국회의원 선거를 늘 염두에 두고 지낸다. 대통령은 역사적 업적을 의식하지만, 의원들은 지역구 사업이 우선이다.

이질적 목표를 지닌 대통령과 의원들이 협력하기 위해서는 마치 한·미동맹의 경우처럼 공동의 이익을 발굴하고 더 나아가 신뢰를 쌓는 것이 긴요하다.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의식적으로 공동 이익을 발굴하고 신뢰와 평화를 축적해가야 한다. 예를 들자면 이명박 정부의 ‘경제 살리기 프로젝트’의 성공은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공동의 이익이다. 한나라당으로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대표 프로젝트가 성공해야만 4년 후의 총선과 5년 후의 대선에서 유리한 입지에 설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대통령과 여당의 의견이 갈리는 이슈보다는 규제 개혁과 경쟁력 강화처럼 공동의 이익을 보장하는 입법 조치들이 우선돼야 한다.

하지만 공동의 이익만으로 신뢰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담백한 대화와 정보의 공유가 신뢰를 두텁게 한다. 전 세계 일백여 개 국가의 지도자를 상대하는 미국의 대통령도 하나의 국내 입법을 위해서는 무명의 앨라배마 출신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기도 하고 몬태나 출신 의원과 단 둘이 식사를 하기도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주 워싱턴과 도쿄에서 한국 외교를 ‘화난 얼굴을 한 외교’에서 ‘활력과 자신감을 갖춘 외교’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는 국내 무대를 바꾸어갈 차례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