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상운이 우울해 할 때 그를 위로하기 위해 다가온 선의의 남녀들을 그는 무참히 파멸시켰다.상운은 예술적인 사기를 위해 평소에 여간해서는 본색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채영을 제외하곤 상운을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없었다.사람들은 돈많고 여 유있게 삶을 즐기는 상운을 믿고 인간적인 신뢰나 사랑을 보냈다가는 무참히 당하곤 했던 것이다.상운에게 종말까지 당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에이,사람이 설마 그럴리가…』했다가는 정말 그렇게 당했던 것이다.특히 우리나라 같이 어수룩한 나라에서 상운은 얼마든지 사기와 살인을 즐길 수 있었다.우리나라 사람들은 귀찮은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법정 투쟁을 통해 조금만 진을 빼놓으면 대개는 스스로 질려 항복하거나 포기하곤 했다.상대는 좋게 말로 해결하려 하는데 상운은 일급 변호사를 붙여 놓고 놀러다니면 뒷일은 모두 변호사가 알아서 재미있게 처리하곤 했다.그러다 일이 잘못되면 상운은 돈 몇푼 손해보면 그만이었지만 상대는 이미 상처를받을대로 받은 뒤였다.그렇게 다시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아갈 때 만난 상대가 희경이었다.
상운이 오늘은 어떻게 놀면 재미있을까 궁리하다가 거지 분장을선택하고 나선 날 그녀를 만난 것이다.상운은 처음에는 예쁜 여자길래 그저 겁을 좀 주어 다채롭게 즐겨볼까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넋두리를 통해 그녀가 정민수의 마누라임을 알 아채고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어쩌면 정민수가 자기를 더이상 상대해서는 안될 절대악으로 치부해버리고 강물로 뛰어들어 잃어버린 복수의 기회를 다시 만난 것이었다.역시 하늘은 무심하지 않은 것이다.상운이 어떻게 하면 그녀를 맛있는 복수 의 제물로 삼을까 이리저리 궁리하는데 갑자기 그녀가 살인 제의를 하는 것이었다.상운은일단 나는 피를 보면 계속 봐야 하니 한 명만은 못죽인다고 거부하고 벌렁 드러누워 잠자는 척했다.그리고는 어떻게 하면 그녀의 제의를 재미있게 요리 할 수 있을까 궁리하는데 그녀가 다시네명의 살인을 더 제의하는 것이었다.그리고는 주저리주저리 신세타령을 하는 것이었다.그때 상운은 나름대로 사기 플랜을 끝마쳤다.살인은 모조리 그녀가 하고 그에 대한 죄의 대가도 모두 그녀가 받게 하는 것이다.정민수는 그녀를 위해 희생한다고 자랑했지만 이 험난한 세상에 그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짓인지를 똑똑히보여주는 것이다.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상운 이상으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다.그는 그녀를 살인 마로만든 것이다.그녀가 고분고분 그의 말에 따르게 하기 위한 선결조건은 그녀를 왕창 겁주는 것이었다.일단 겁을 주어 항복을 받아 놔야 고분고분 말을 잘 듣겠기 때문이다.그래서 상운은 비장의 장비를 동원했다.바로 그가 오래전 부터 고안해온 특수 플로팅 가스(floating gas)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