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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96) 서울 동작을 열린우리당 이계안 후보

중앙일보

입력

“한때 경제의 디딤돌이었던 경제 정책이나 조치도 상황이 바뀌면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국민의 정부’의 개인 대출 활성화 정책과 건설 경기 부양책이 바로 그런 예죠. 소비를 촉진해 경기를 회복시키느라 그런 처방을 썼지만, 그 후유증인 신용불량자 양산과 부동산값의 파행적 폭등이 지금 경제 회복의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서울 동작을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여의도 입성을 노리는 이계안(52) 전 현대카드 회장은 경제 회생의 묘방을 묻자 “일개 의원 후보에겐 과분한 질문”이라면서도 “정책의 불확실성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일자리 문제 특히 청년 실업이 심각하지만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투자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1년 정부가 노동정책 등을 통해 시장에 보낸 시그널로 인해 기업들이 투자를 하기엔 불확실성이 컸다고 할 수 있죠. 노와 사는 서로 적이 아니라 라이벌의 관계입니다. 라이벌은 리버(강)와 어원이 같은데, 노사는 말하자면 강의 이쪽과 저쪽에서 강을 서로 공유하는 사이라고 할 수 있죠. 한쪽에서 강물을 오염시키면 양쪽이 공동의 피해자, 경우에 따라서는 공멸할 수도 있는 관계입니다.”

그는 “시장 참여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정책을 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 예로 그는 농어가 빚 대책을 들었다. 그동안 역대 정권이 100조 이상의 돈을 쏟아부었지만 정작 농업 구조조정의 성과라고 내세울 만한 게 없다는 것이다. 대신 “빚을 갚을 만했던 많은 대규모농들이 면책이 되고 빚 탕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신뢰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라고 주장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 시장이 받은 충격을 완화하고, 이어진 탄핵 반대의 역풍을 차단한 것도 시장이 그를 신뢰했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이 부총리가 경제 사령탑으로 있다는 게 자신이 정치 입문을 결심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됐다고 털어 놓았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76년 현대중공업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이 후보는 마흔일곱에 현대자동차 사장을 지냈다. 정치판에 뛰어들 때까지 30년 가까운 세월을 ‘현대맨’으로 살았다. 실물경제통인 그는 “완전고용은 ‘사장’이 아니라 ‘시장’이 보장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가 바라는 건 고용 안정, 고용의 보장, 궁극적으로 완전고용입니다. 현대에 있을 때 고용 보장에 대한 각서를 노조에 써 준 일이 있는데, 그 때 노조 대표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장에 맞는 물건, 시장에서 팔리는 차를 만드는 팔리는 공장이 돼야 오버타임(시간외 근무)도 하는 거다. 반대로 물건이 안 팔리는 땐 레이오프(일시적 해고)도 할 수 있어야 기회가 오면 고용도 확대할 수 있다.’”

▶ 현대자동차 사장을 지낸 이계안 후보는 “정경유착 근절의 근원적인 처방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시장경제로 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규제를 시장의 경쟁으로 대체하고, 작은 정부를 실현해 경제 활동에 대한 정부의 관여를 줄이는 것이 가장 확실히 정경유착을 뿌리 뽑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안윤수 월간중앙 기자

최근 신용불량자 급증의 원인이 정부 정책의 실패만일 수 없다. 신용카드 회사, 그 회사의 최고경영자도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 후보는 “개인 신용 평가 시스템 등 인프라의 미비로 인한 시스템의 실패 속에서 경영을 잘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만 저 자신도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가 등원하면 재벌 그룹 최고경영자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정경유착 구조의 한 축에서 다른 축으로 이동하는 셈이다. 거두절미하고 현대에 있는 동안 비자금 조성에 관여했거나 정치권 등에 비자금을 건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일절 관여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대답이 미진하다고 생각했던지 그 말 끝에 “어떤 상황이든 예외적인 경우는 있다”며 “술도 잘 못하고, 담배도 안 피우고, 남 앞에서 노래를 절대 하지 않고도 일찍이 CEO가 될 수 있었다”고 응수했다.

이 후보의 캐치 프레이즈는 ‘수출할 만한 국회의원’이다. 전문 경영인 출신의 경제 전문가이지만, 정치인으로서도 국제 경쟁력이 있다는 시사이다. 정치는 그러나 내수 산업이다. 정치인을 수입할 수만 있다면 발빠른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정치 서비스 시장이 이렇게 엉망이 되도록 내 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 홍콩 땅에서 필리핀 사람들과 가정부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요즘 부쩍 듭니다. 그런 날이 오지 않도록 하려면 지금 한국 경제를 도약시킬 동력을 찾아 내고, 이 나라가 동북아의 허브로 거듭날 정책을 펴야 돼요. 그 일을 할 사람들이 지금 필요합니다. 때 되면 은퇴해 남은 인생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었지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정책이 이래’ 하고 넘기기엔 경제 상황이 너무 어려워요.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넘겨 주고 싶습니다. 한 세대 전 광원으로, 간호사로, 때로는 용병 소리를 들어가며 이국 땅에서 외화를 벌어들였던 우리 전 세대들이 그랬듯이….”

이필재 월간중앙 정치개혁포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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