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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쇼로 거듭난 풍물… 세계인 '신명 DNA' 깨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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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국 전통문화 예술공연 단체 ‘들소리’의 문갑현 대표가 경기도 고양시 주엽동 연습실에서 밝게 웃고 있다.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올 1월 13일 오후 7시30분 미국 뉴욕의 젊은이들 사이에 최고의 파티장소로 꼽히는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의 웹스터홀.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한 무리의 한국 젊은이가 개량 한복 차림으로 무대에 등장하자 500여 명의 관객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숨을 죽인다.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정적이 더욱 깊어지는가 싶더니 바로 그 순간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에 홀 전체가 일시에 깨어난다.

“둥 둥 둥 뚜다닥 둥 둥 뚝딱뚝딱 둥둥 뚜다닥….”

지름 1m짜리 큰북 세 대가 토해 내는 장엄한 고함에 영혼을 추스른 관객들은 산더미처럼 덮쳐 왔다 포말로 잦아들고, 다시 산더미가 되는 파도 같은 강약에 이내 압도되고 만다. 이어 애절한 소금 가락이 허공을 가르고 현란한 모듬 북 연주에 장구·거문고·가야금이 가세하면서 소리꾼의 ‘비나리’를 추어올리자 홀 안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가 돼 버린다. 자신도 모르게 하나 둘 어깨를 들썩이던 관객들은 어느덧 누구라 할 것 없이 폴짝폴짝 뛰어오르고 광대들의 선창에 맞춰 “어기여차, 영-차” 추임새를 한다.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라 숨이 턱에 차는 듯싶은 찰나 태평소가 절규하고, 미친 듯 몰아치는 꽹과리의 격렬한 비트가 가슴팍을 후벼 파대자 관객들은 마침내 신명에 겨워 폭발해 버리고 만다.

이날 공연 작품은 한국의 전통문화예술 공연단체 ‘들소리(대표 문갑현·47)’의 ‘월드 비트 비나리’. 세계 최대 공연예술 마켓인 APAP(Association of Performing Arts for Presenters)와 더불어 개최되는 ‘글로벌 페스트(Gloval Fest)’의 메인 무대 오프닝 공연으로 이뤄졌다. 글로벌 페스트는 월드 뮤직 스타들도 누구나 한 번쯤 서 보고 싶어하는 ‘꿈의 무대’로, 들소리의 이번 초청공연은 아시아 팀으로는 최초다. 뉴욕 타임스는 1월 15일자 아트섹션 5면 톱기사로 ‘들소리’의 공연 사진과 함께 “깊고 웅장한 소리로 전통과 스펙터클을 한데 보여 주었다”며 “소리꾼이 마치 팝스타와 같은 몸짓으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등 현대적 쇼 비즈니스 감각도 갖춘 팀”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공연 전문 주간지 ‘버라이어티’도 “이날 가장 극적인 순간은 들소리팀에서 나왔다”며 “월드뮤직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공연”이라고 호평했다.

“공연 직후 뉴욕 링컨센터의 프로그래밍 디렉터인 빌 브래진(Bill Bragin)이 느닷없이 찾아왔어요. 그러곤 8월 초 링컨센터가 개최하는 여름축제(Out of Doors)에 참가해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마 했더니만 이어 남미·북미 할 것 없이 다른 곳에서도 줄줄이 초청이 몰려들더라고요. 그동안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해 왔는데 이번을 계기로 일단 세계적인 활동 기반이 마련된 셈이에요.”

문 대표의 말마따나 ‘들소리’의 해외 공연 스케줄은 장난이 아니다. 이미 이달 18일 뉴욕의 ‘아시아 문화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5월 초까지 미국·멕시코를 거쳐 중순부터 이탈리아·영국·스페인 등 유럽투어를 한 뒤 8월 초 다시 미국으로 가 링컨센터 축제에 참가하고 이어 베네수엘라(9월), 콜롬비아(10월), 캐나다(11월), 아랍에미리트(12월) 공연까지 줄잡아 40회 이상 꽉 차 있다. 특히 7월엔 영국 윌트셔 찰튼 파크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월드뮤직 축제 ‘워매드(World of Music, Art and Dance)’에 공식 초청돼 메인 무대에 선다. 포르투갈 민속음악인 ‘파두(Fado)’로 세계 음악계를 강타한 수퍼스타 마리자(Mariza)나 2005년 그래미상 월드뮤직 앨범상을 수상한 세네갈 출신의 보컬 겸 타악주자 유수 은두(Youssou N’Dour)도 바로 이곳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같은 권위의 축제에 ‘들소리’가 2005, 2007년에 이어 2년 연속해 올해도 초청받은 것이다(지금까지 2년 연속 초청받은 건 마리자가 유일하다). 이뿐만 아니라 내년도 스케줄도 이미 10여 건 잡혀 있을 정도다. ‘들소리’는 2006년에도 12개국에서 47회, 지난해엔 12개국에서 무려 80회나 공연한 바 있다. ‘들소리’는 그야말로 월드뮤지션들 사이에 신성(新星)이다.

국내에선 아직도 무명(?)인 ‘들소리’가 이처럼 해외에선 스타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물론 정답은 뭐니 뭐니 해도 실력일 테지만 그 중심엔 언제나 문갑현 대표, 바로 그가 있다. 작품을 구상해서 만들고, 다듬고, 훈련시켜 해외 공연 마켓에 선보이기까지 그의 손길을 거치지 않는 게 없다. 자신이 농악대 상쇠 출신이자 춤꾼으로 공연감각이 뛰어난 데다 25년째 광대 무리를 이끌어온 터라 기획 능력 또한 남다르기 때문이다.

그가 전통예술공연꾼이 된 것은 1984년 경남 진주에서 놀이패 ‘물놀이’를 결성, 마당극 문화운동을 펼치면서부터.

“경상대 농학과 재학 시절 농활의 일환으로 탈춤동아리 활동을 하다 군대에 다녀온 뒤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에서 학교도 때려치우고 후배 세 명과 시작한 게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진주민란을 소재로 한 ‘진양살풀이’ 공연(84년 11월)을 시작으로 ‘잿밥타령’ ‘한솥밥 먹기’ ‘불꽃이 되어’ ‘미군드리 미군드리’ ‘너도 먹고 물러나라’ 등 의식화 냄새가 짙은 마당극과 함께 각종 행사에 불려 다니면서 제법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의견 충돌로 후배들과 결별하는가 하면 딴살림을 차리면서 놀이패 이름도 ‘울림터’(88년)를 거쳐 지금의 ‘들소리’(91년)로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90년 11월 결혼하면서 생긴 500만원으로 이듬해 진주에 소극장 ‘우리살림 들소리’를 열고 20여 명으로 노래패·연극패·풍물패를 운영하면서 재기에 성공한 문씨는 전국적 네트워크인 민중문화운동협의회 일원으로 임진택·김명곤·정희섭·박인배 등 스타급 인사들과 친분을 쌓는 한편 공연 비중을 마당극 대신 풍물과 놀이 중심으로 바꿨다. 자생력 확보를 위한 변신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93년 7월 사물놀이를 들고 처음으로 이스라엘·그리스·폴란드에서 열린 세계민속예술제에 참가해 국제적 흐름을 접하고, 그해 11월 경주에서 열린 제11회 전국국악대제전에선 최우수상인 문화체육부장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문씨가 상경한 것은 99년 1월. 보다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 세계로 진출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역시 ‘촌놈’은 촌놈이었다. 그동안 쌓은 공력으로 남도에선 제법 알아주었는데 막상 큰물에 와 보니 무에 하나 통하는 구석이 없었다.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황야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으로 1년을 방황한 끝에 도달한 결론은 역시 “확실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즉시 구상에 들어갔죠.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뤄 스토리는 배제하고 타악 중심으로 가되 사물놀이 정도로는 약하니 북의 에너지를 살리자, 그리고 무대를 허물어 관객과 하나가 되는 판을 만드는 거야! 단원들을 소집해 생각을 털어놓으니 모두 좋다고 했습니다.”

‘들소리’가 지난해 5월31일 슬로바키아의 질리나 페스티벌에 참가해 ‘월드비트비나리’를 선보이자 5000여 명의 관객들이 환호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무려 7개월이나 걸려 2001년 말 마침내 ‘들소리’의 본격적인 첫 간판 작품인 ‘타오(Tao·道)’가 탄생됐다. 이름은 ‘즐거움을 찾아가는 길’이란 뜻으로 그렇게 붙였다. 전통과 축제, 상생이라는 개념을 아울러 우리 고유의 마을 축제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타오’는 더욱 가다듬어 2003년 문예진흥원 대극장 ‘아르코’ 공연과 이듬해 국립극장, 예술의전당 공연을 통해 대단위 관객을 끌어 모으는 데 성공했다. 또 2004년 6월 싱가포르 아츠 페스티벌에 초청돼 아시아팀으로는 처음으로 사흘에 걸쳐 단독 폐막공연을 함으로써 세계 무대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를 바탕으로 홍콩·뉴질랜드·네덜란드 아츠 페스티벌에 이어 드디어 2005년 호주 워매드에 초청받았고, 이곳에서 워매드 총감독 토머스 브루먼(Tomas Brooman)의 눈에 띄어 그해 7월 워매드의 본고장인 영국 워매드에서 초청공연을 하는 영광을 안았다. 2006년에는 ‘타오’를 업그레드시킨 ‘월드비트 비나리’로 싱가포르 워매드와 전주에서 소리축제와 함께 열린 소리 워매드에, 2007년엔 스페인 워매드와 영국 워매드에 초청됨으로써 2년간 6개 워매드에서 공연하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월드뮤직계에 우뚝 서게 되었다.

“저희의 강점은 아무래도 한국적 정서를 담은 다이내믹한 역동성일 겁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변신을 꾀하는 점도 그렇고요. 실제로 워매드 총감독 브루먼도 ‘끊임없이 발전적 변화를 시도하고 적응해 나가는 노력에 존경을 표한다’고 했어요.”

‘들소리’는 단순한 문화 교류 차원이 아닌, 문화상품으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거의 유일한 전통문화공연 단체일 것이라고 문 대표는 말한다. 한 번 공연에 1만 달러를 받는다. 지난해엔 2억원쯤 벌었다(30명의 단원 월급과 사무실 운영비 등 경상비는 국내 공연으로 충당하고 해외에서 번 돈은 몽땅 재투자해 오고 있다). 2006년 런던에 이어 올해엔 뉴욕에도 곧 지사를 내고 세계적인 에이전시들과도 손을 잡을 계획이다. 마케팅을 키우기 위해서다. 또 올 9월 프랑스의 로조(Lozo)팀에 소리꾼과 가야금 연주자를 보내 협연케 하는 등 월드스타들과의 교류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이를 위해 전 단원을 멀티플레이어로 만드는 노력도 한창이다. 문 대표는 이와 함께 일이 잘만 풀리면 앞으로 5년 안에 미국과 서울에 각각 전용시설과 공간 확보도 가능할 것이라고 귀띔한다.

“주위에선 성공했다고들 하지만 아직 멀었습니다. 이제 겨우 1% 정도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뿐입니다. 정말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키 1m70㎝의 작달막한 체수에도 그 웅숭깊은 속하며 일에 대한 열정을 보면 그의 별명이 왜 ‘산 깎는 불도저’인지 알 것 같다.

글=이만훈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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