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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한국이 더 심각한 關僚위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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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치가 중심을 잃고 나라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공무원이원성의 대상이 되는 현상은 한국과 일본이 비슷하다.지금 두나라관료는 함께 바늘방석에 앉아 있다.차이가 있다면 일본의 관료는너무 세다 해서,한국의 공무원은 너무 약하다 해서 집중타를 맞고 있다.
최근 관료에 대한 일본 정계.재계.언론의 비판은 비등점을 향하고 있는 느낌이며 여기에 미국도 가세하고 있다.민간경제가 거대화.국제화되어 官의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음에도 일본관료는규제를 통한 권한의 독점을 놓지 않으려 해 국가 발전의 저해요인이 되고있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다.
비판론을 좀더 들여다보면 관료가 민간의 경쟁원리를 경시하면서내부의 영역다툼에 집착하고 있는 점,관료가 주도하는 산업정책이시대의 흐름에 뒤처져 오히려 산업발전을 저해하는 현상,통계자료.국제회의 발언록등을 빼고는 관청의 정보가 질 적인 면에서 민간보다 나을게 별로 없다는 점등이 지적되고 있다.
또 통산성이 추진한 테크노폴리스(고도기술집적도시)의 좌절에서보았듯이 관료의 선견성(先見性)은 점점 의심받고 있으며 1백가지 상품에 1백명의 담당자가 있어야 한다는 식의 관료적 발상으로는 민간을 지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미국의 클 린턴대통령과 캔터무역대표도『일본의 관료는 그들의 힘을 잃을 것을 두려워해 규제완화와 수입자유화에 언제나 반대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정치인들은『관료들이 대중민주주의가 잘못되었다는 신념을 버리지않고 있으며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해내랴는 미망에 사로잡혀 있다』고 공격한다.관청의 담장 밖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기업의 어려움은 짐짓 외면하면서 그들끼리의 논리에 자부심을 느끼는「수재들의 함정」에 빠져있다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일본관료의 반론은 단호하다.나라를 움직이는데는 면밀한 계획과 실행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대신해줄 데가 없다는 것이다.공부안하고 이권이나 쫓는 정치권은 믿을 수 없고,기업은 풀어놓으면 위험하다는 것이 관료들의 솔직한 인식인 듯 싶다.최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중앙관서 과장급을 대상으로 실시한 앙케트조사에서 63%가 現무라야마 연립정권을 비전도,의욕도,능력도 없는 정권이라고 비판했고 4명중 1명은 관료에 대한비판이 매스컴의 오도 때문이라고 대답 했다.
일본의 관료가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은 국민들간에 관료의권력과잉 못지않게 정치의 무능이 더 문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데다 행정의 안정과 일관성을 위해 정치인인 대신(大臣)이 관료의 인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지켜지 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권을 놓지 않으려는 속성등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받는 비판의 몫은 한국의 관료도 일본과 마찬가지다.그러나 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정권을 겪으면서 보이고 있는 한국관료의 무기력.방황은 거의 무장해제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듯하다.
對북한 전략과 정책업무를 수행하는 통일원이 「쌀 문제」에 대해『우리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 것도 모른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다.대통령이「가장 공신력있는 기관」이라고 표현한 검찰은아예 코미디의 대상이 되고 있다.어느 중견검사의 『12.12수사에서 3분의 1,5.18에서 3분의 1,4천억원비자금에서 3분의 1을 까먹어 검찰의 공신력은 제로가 되고 말았다』는 자조는 차라리 비극을 연상케한다.검찰이 무슨 수사를 해도 안믿는 세상을 만들고 정치권력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관료주도로 정책결정을 해야 한다는 일본관료의 지나친 확신도 문제지만 엘리트관료가 본분을 잃고 모든 안테나를「저수준」의 정치권력에 맞춰 존재이유를 스스로 훼손해가는 한국의 관료는 더 딱해 보인다.
〈日本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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