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형대한민국CEO]병원 경영을 수술한 병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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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경영의 성공 모델’ ‘병원 프랜차이즈의 창시자’.

‘예치과’로 유명한 병원 네트워크 회사 ‘메디파트너’의 박인출(사진) 대표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듣기까지 그는 ‘길이 아닌 곳을 가는 엉뚱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더 많이 들어야 했다.

1992년 대학 동기 4명과 함께 서울 역삼동에 예치과를 차렸다. 지금은 전국에 퍼져 있는 예치과·예한의원의 원조 격이다. 그때만 해도 공동 개원은 개념이 없었던 때다. 둘도 아니고 네 명이, 그것도 성향이 각각 다른 사람들이 동업을 한다는 계획에 주위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렸다. 1년 안에 깨질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는 우선 진료에 경영기법을 접목했다. 4명이 자신의 주전공 분야만을 진료하는 식으로, 한 우산 아래서 분업을 했다. 박 대표가 치아교정, 다른 의사들은 치주질환·보철·미용치료를 맡았다. 진료대는 낮추고 침대는 넓히며 의사 중심의 시설을 환자 위주로 바꿨다. 진료비를 조금 더 받는 대신 환자들에게 진료 만족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한마디로 환자를 고객으로 보았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환자 위에 군림하는 의사가 많았다. 환자들 덕분에 돈을 버는 데도 그랬다. 의사가 환자를 모시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국 의료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그의 행보에 보수적인 의료업계는 뒤집어졌다. “의료에 무슨 경영이고 서비스냐”는 반응이었다. ‘의료인의 품위 손상’이라는 죄목으로 고발당해 검찰청도 드나들었다.

그러다 프리미엄 치과병원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환자가 점점 늘어났다. 94년 서울 여의도에 2호를 냈다. ‘예’라는 이름으로 병원 체인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지금은 예한의원·예성형외과 등 국내 61곳의 병원 네트워크로 발전했다.

현재 예병원의 관리는 프랜차이즈 본부 격인 메디파트너가 맡고 있다. 각 병원들은 진료에 집중하고, 의료연수·마케팅·브랜드·인테리어 관리 등은 메디파트너가 맡는다. 이 같은 프랜차이즈식 경영은 동일한 진료의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박 대표는 이를 위해 엄격한 심사와 관리를 한다. 많은 병원이 네트워크에 들어오길 희망하지만 4분의 1 정도만 가입이 허용된다. 같은 식구가 됐다가도 서비스가 나쁘거나 진료의 질이 떨어지면 퇴출시킨다. 지금까지 3개 병원이 퇴출당했다.

이런 시스템을 일본 의사들도 돈을 주며 배워가고 있다. 박 대표는 중국·베트남 등 10곳에 예병원을 설립하며 ‘의료 한류 바람’을 일으키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5월에는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도 예치과를 개설한다. 관광산업에 의료를 접목하기도 했다. 서울 청담동 예치과는 일본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통역과 환자 관리를 맡는 일본인이 따로 있다. ‘욘사마’ 배용준씨가 이 병원 고객이라는 소문이 퍼진 뒤 일본인 고객들이 늘어나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일본에 비해 가격은 20% 정도 싼 데다 의료 수준은 일본과 비슷하니 일본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다.

“한국 의사들은 우수한 머리와 최고의 손재주를 가지고 있다. 치과는 세계 제일, 의료 전체로는 세계 4강 안에 든다. 이런 실력으로 의료를 산업화하면 세계로 시장을 점점 더 넓혀갈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우리나라의 제도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의료를 산업화하려면 투자가 필요한데, 현행법에서는 병원이 자본을 제대로 유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료법에는 의료인이 아닌 민간 자본이 의료기관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는 “공공 의료부문은 국가가 책임지고, 민영 의료는 투자를 허용해 기업처럼 시장에서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며 “경쟁을 하면 의료서비스가 향상될 것이고, 새로운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져 실업률을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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