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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 韓人들 鳳梧洞영웅洪範圖장군 유해봉환 추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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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郭輔炫특파원]중국 간도지방의 봉오동(鳳梧洞)전투(1920년).청산리전투(1921년)등 항일 독립운동사에 찬란한 금자탑을 세운 홍범도(洪範圖)장군의 유해가 머지않아 고국에 봉환될 것으로 보인다.
해방 50주년을 맞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의 고려인들을 중심으로『장군을 이제 고국에서 영면하게 해드리자』는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고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추석과 한식엔 그분 묘지에 참배하는 고려사람이 많지만 1세대인 우리가 죽고나면 장군은 잊혀질테니 장군만이라도 고국에 돌아가셔야죠.』 93년 결성된 크질오르다「홍범도기금 모임」총무 朴블라디미르(74)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봉환운동의 배경을 말했다.
올 1월 크질오르다에선 머리가 하얗게 센 1,2세대 고려인 2백60명이 모여『한국정부가 현지에 洪장군을 기리는 기념관을 건립한 뒤 유해를 모셔가게 하자』고 결론지었다.
洪장군의 손녀인 洪예카체리나(80)씨도 장군의 유해가 한국에봉환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현지 고려인들은 전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주한대사관 관계자는『洪장군의 유해 봉환에 대해 카자흐스탄정부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받은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나「넘어야할 산」은 많다.무엇보다 북한당국이 유해를 가져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현지 고려인들이 한국으로 유해를 봉환하려 하자 지난해8월 洪예카체리나씨를 평양으로 데려가 기념관 건립지를 보여주며회유했다.
洪씨가 서울행을 고집하자『평양에 또 다른 가족이 있다』며 억지를 쓰기도 했다.
洪장군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크질오르다의 황무지로 쫓겨난 고려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다.백두산.개마고원일대 포수들로 조직된 국내 최강의 독립군부대를 이끌며 30여차례의 유격전을 승리로 이끌었고,일제의 압제를 피 해 러시아에망명한뒤 현지 고려인들에게「독립의 꿈과 희망」을 전해줬던 洪장군은 이역땅에서 곤궁한 삶을 살아가던 고려인들의 신화이자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년은 쓸쓸했다.洪장군은 구두공장직공,극장과 대학의 수위로 망국의 한을 달래다 해방을 불과 2년앞둔 43년 75세를 일기로 쓸쓸히 숨졌다.
그뒤 洪장군이 살던 집은 자취도 없어져 버렸고 55년 지정된홍범도거리에는「홍범도 1868~1943.블라디보스토크에서 소비에트를 위해 싸운 빨치산대장」이란 옛소련의 정치색 담긴 안내판만 카자흐인 주택가 한편에 덩그러니 붙어었다.
83년 크질오르다.알마아타.타슈켄트에 있는 고려인들은 한푼두푼 성금을 모아 洪장군의 묘비와 흉상을 만들어 크질오르다 중앙묘지에 세웠다.
朴블라디미르씨는『이곳 고려인수가 줄어들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洪장군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지고 있다』며『하루빨리 봉환이 이뤄지기 위해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카자흐스탄 정부에 대한 설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복절을 며칠앞둔 지난 11일 中央日報社가 후원하는 경희대 해외의료봉사팀이 洪장군의 묘역을 참배했을 때 洪장군의 흉상은 광복 50년이 감격스러운듯 먼 조국의 하늘을 물끄러미 응시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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