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아동 성범죄 안전망을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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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 사건들을 보면서 아동의 성폭력 피해에 대한 지원과 예방을 위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더 나아가 아동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어른이자 사회의 일원으로서 부끄러움과 자책을 금할 수 없다. 그리고 아이들을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지 못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어른들은, 그리고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는가, 우리 아이들은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 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됐다.

 아동 성범죄에 대한 우리 정부의 본격적 관심은 2004년 6월 13세 미만의 아동 성범죄 피해자를 위해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해바라기 아동센터’ 개소로 본격화됐다.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국민적 요구에 정부와 국회는 다양한 정책과 법안을 제시하며 대안 마련에 고심하기도 했다. 성범죄자에 대한 전자팔찌 착용, 형량 강화, 신상 공개 등의 방안이 나왔다.

그러나 이 같은 제도와 예방책을 비웃듯 ‘혜진이·예슬이’ 사건이 발생하였고, 일산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아동 성범죄자에 의한 어린이 유괴 및 폭행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범죄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아동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성범죄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 것이다. 더구나 법원에서는 ‘피해는 인정이 되지만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는 판결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강화된 처벌 법규는 있으나 용의자에게 적용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판결은 수사과정에서 힘들게 조사받은 피해 아동과 그 부모에게 2차, 3차의 피해와 좌절을 안겨준다. 결국 아동 성폭력 예방과 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단순히 범죄 척결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아동의 안전이라는 총체적인 맥락 속에서 아동의 성폭력 피해, 즉 성범죄의 예방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 같은 범죄의 발생을 계속 지켜봐야만 하는 것인가.

첫째, 우리 사회 어른들의 아동 보호에 대한 의식 전환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아동의 안전을 지키는 책임은 아동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른들이 아동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체계적이고 치밀한 안전망(시스템)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예방교육의 최우선 목적도 아동이 자신을 지키도록 만드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아동을 안전하게 지켜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는 부모와 교사, 나아가 우리 사회, 어른들이 아동을 지키기 위해 우선적으로 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

둘째, 아동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의 실천 측면이다. 아동 양육의 일차적 책임이 있는 가정을 시작으로 학교, 지역사회, 국가가 각각의 역할과 기능 수준에 맞는 종합적인 안전·복지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아동이 절대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연령에는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부득이하게 돌볼 수 없는 때에는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 또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셋째, 법적 측면에서 처벌의 강화와 함께 이를 집행할 수 있도록 수사 능력이 보강, 강화되어야 한다. 성인에 대한 성범죄와 발생 시각, 장소, 피해 유형 등에서 차이가 있는 아동 성범죄에 대한 전문 수사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그래야만 대부분의 아동 성범죄 사건이 ‘범죄는 있지만 범인이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최경숙 해바라기아동센터 소장·전 나사렛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