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탄핵 때문에 잔업 거부한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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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민주노총이 탄핵안 가결에 대한 항의 표시로 매주 수요일 산하 사업장별로 잔업 거부 투쟁에 나서기로 결의했다. 도대체 탄핵과 잔업 거부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더구나 정치권이 총선 연기.내각제 개헌 등을 시도할 경우 즉각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니 더욱 어안이 벙벙하다. 정치권에서 언제 그런 말을 했는가. 왜 가정법을 동원해서까지 사태를 부풀리려고만 하는가.

산업 현장의 근로자들이 이번 결의에 얼마나 호응할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지금같이 민감한 시점에 한국 노동계 양대 축 중 하나인 민주노총이 이런 결의를 한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이런 결의는 불법이다. 노동조합 및 근로관계조정법에는 '임금.노동시간.복지.고용을 비롯한 근로조건'과 관련되지 않은 쟁의행위는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무리 넓게 봐도 탄핵 가결은 근로조건과 관계가 없다.

민주노총이 정치적 이슈에 근로자의 작업권과 기업 활동을 볼모로 잡는 것도 잘못이다. 잔업을 안 하면 근로자 수입이 줄고, 기업은 납기를 못 맞춰 경영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누구를 위한 잔업 거부인가.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인 입장에서는 탄핵 정국의 불안만도 벅찬 마당에 잔업 거부까지 들고 나온다면 기업더러 아예 죽으란 소리나 다름없다.

탄핵 정국이 노사관계에 영향을 준다면 국제신인도, 나아가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이 올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민주노총이 불법 행위를 공식 결의한 것은 우리의 경제 현실을 너무 모르는 부적절한 행동이다. 노총 지도부의 세 과시용이라면 더욱 잘못이다. 행여 이런 분위기가 다른 시민.사회 단체들로 확산돼 사회 불안과 갈등으로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악재들이 확산되면 경제에는 더욱 치명적이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정치적 투쟁 대신 경영진과의 협조를 통해 경제를 살리는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일자리도 생기고, 근로자도 살고, 민주노총도 산다. 현명한 판단을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