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폭주족이 아니다" 이륜차 사고 사망자 명예회복 운동 물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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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폭주족이 아닙니다. 사회복지사를 꿈꾸던 스물일곱살의 바른 라이더였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교통 사고로 목숨을 잃은 한 대학원생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기 위해 전국의 오토바이 매니어들이 나섰다.

10일 오후 6시30분께 전주의 한 도로에서 약사 김모(37)씨가 몰던 승용차가 신호 대기 중이던 오토바이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대학원생 김모(27)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평소에 오토바이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던 승용차 운전자 김씨는 이날도 운전 도중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앞으로 끼어들자 격분해 고의로 오토바이를 들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오토바이를 들이받으려고 3㎞를 뒤쫓아갔으며 사고 당시 주행속도가 시속 120㎞에 달해 오토바이와 추돌한 다음에도 6대의 차량과 잇따라 부딪쳤다.

경찰은 운전자 김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사고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비난은 승용차 운전자가 아닌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쏠렸다. 고의로 오토바이를 들이받은 것은 잘못했지만 무질서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고를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폭주족일 것이라는 추측도 마치 명백한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네티즌들은 “나도 굉음을 내면서 앞질러가는 폭주족 보면 들이받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저런 오토바이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폭주족은 없어져야 합니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한편에서는 “폭주족, 잘 죽었다”는 악플까지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사망한 오토바이 운전자 김씨가 폭주족이 아닌 모범 운전자였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려지면서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됐다. 이 글에 따르면 사망한 김씨는 전북의 한 오토바이 동호회 운영자였다. 글을 올린 동호회 회장 전모씨는 “사고를 당한 김군은 다른 차량에 대해 위협운전이나 난폭운전을 해본 적이 없다”며 “오히려 같이 투어를 다니면 답답할 정도로 교통신호를 준수하고 정지선도 잘 지키고 차선변경 또한 안전이 확보된 다음에 하는 친구”라고 말했다. 사고를 당한 오토바이의 머플러 역시 순정상태이기 때문에 ‘굉음을 내며 추월했다’는 승용차 운전자의 진술이 사실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전씨는 “일부 기사에서 오토바이가 굉음을 냈고 난폭운전을 하며 차량을 위협했다고 적었고 이런 왜곡된 기사를 보고 일부 네티즌은 김군을 폭주족으로 만들어 버렸다”며 “김군은 대학원생이고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그날도 자원봉사를 마치고 수업을 위해 학교로 가던 중이었다”고 썼다. 그는 “항상 환하게 웃으며 화 한번 안내던 젊은 친구, 착하기만 하고 순하디 순한 친구를 위해 잘 가라고 편히 가라고 기도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머리 숙여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으로 글을 맺었다.

이 글이 화제가 되면서 오토바이 매니어들도 숨진 김씨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팔걷고 나섰다. 오토바이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 회원들은 앞다퉈 이 글을 인터넷에 옮기고 있으며 숨진 김씨는 폭주족이 아닌 모범 운전자였다는 내용의 글을 남기고 있다. 여러 네티즌도 함께 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는 승용차 운전자 김씨의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인터넷 서명운동도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4300여명의 네티즌이 서명했다.

네티즌들은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충돌하면 언제나 오토바이 운전자는 폭주족으로 몰린다. 이런 관행부터 없어져야 한다” “심한 사고일 경우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망하면 언제나 과실은 오토바이가 100% 뒤집어 쓴다.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 “폭주족과 건강한 운전자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을 남겼다.

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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