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曺훈현.徐봉수 박카스배서 격돌-3년만의 결승대결 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3백21전 2백23승98패.
조훈현(曺薰鉉)9단이 평생의 동반자 서봉수(徐奉洙)9단과 싸워 얻은 전적이다.바둑계는 물론 다른 어떤 승부세계에서도 단 두사람이 이렇게 많이 맞붙은 일은 없다.曺9단이 실이라면 徐9단은 바늘이었다.그리하여 두사람은 70년대 중반부 터 80년대말까지 거의 모든 타이틀전에서 주인공이 됐다.이른바 15년 曺-徐시대.
그 조훈현.서봉수가 오랜만에 우승컵을 놓고 대결하게 돼 잔잔한 화제를 모으고 있다.무대는 제12기 박카스배.오는 11일 한국기원에서 결승5번기의 첫판을 둔다.92년12월 기왕전에서 대결한 이래(曺3대0勝)거의 3년만의 재회다.
박카스배는 총규모 6천6백만원에 우승상금 6백50만원의 미니기전.왕년에 산천초목을 떨게했던 양웅(兩雄)의 추억의 무대치고는 조촐하기만 하다.
준결승에서 曺9단은 최규병7단을 꺾었고,徐9단은 군복무중인 김승준 4단을 이겨 결승에 올랐다.
지난해 우승자 유창혁6단은 본선 1회전에서 서능욱9단에게 져일찌감치 탈락했고,국내의 새로운 1인자 이창호7단은 이 대회에아예 불참했다.李7단의 불참이 曺-徐대결을 성사시킨 1등공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더라도 두사람에겐 이 대결이 예사롭지 않다.徐9단은 오래전에 무관이 됐고,曺9단도 올해 각종 타이틀전에서 이창호.유창혁에게 연속 패배해 무관으로 전락했다.그러므로 승자는 일단 무관에서 탈출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얻게 된다.
올드 팬들은 이 대결을 감회깊은 얼굴로 기다리고 있다.과거 도전기나 결승무대에서 타이틀보유자는 으레 曺9단이었고 徐9단은단골도전자였다.똑같은 주인공이 나오는 연속극을 무려 15년간이나 지켜보면서 좀이 쑤신 팬들은 누군가 혜성처럼 나타나 曺-徐시대를 끝장내주기를 염원했다.
그러나 90년대 이창호.유창혁이 나타나 타이틀을 석권하면서 사태는 순식간에 반전했다.曺9단은 그래도 꿋꿋이 버텼지만 徐9단이 일사천리로 밀리면서 曺-徐대결은 다시 볼 수 없게됐다.너무도 간단히 曺-徐시대는 흘러간 옛노래가 되고만 것이다.
이번 박카스배에서의 대결은 작은 승부라서 누가 이기더라도 바둑계판도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하겠지만 바로 그점에서 더욱애잔한 맛을 준다.
徐9단의 생애 총전적은 1천11승3무5백33패.曺9단은 9백75승4무3백18패.한사람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1천승을 넘겼고한사람은 1천승에 육박하는 대승부사다.이들은 기술면에서 낙후한한국바둑을 세계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역이기도 하 다.하지만 曺-徐의 결승대결은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냉엄한 승부세계는 본래 흘러간 옛노래는 다시 틀지 않는 법이니까.
朴治文 전문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