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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본격 페미니즘연극 "욕탕의 여인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조시:지금 이 꼬락서니로야 내 묘비엔 「잠자리에서 끝내준 여인,여기 잠자리를 마련하다」정도나 쓰이겠죠.이렇게 끝나버리긴 정말 싫어요.
제인:우리 여자들도 정말 남자들만큼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에 확신을 가져야 해.우린 남자들보다 더 잘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더 못나지도 않은 동등한 존재라구.
단:아빤 일주일 내내 나한테 한마디도 안했어.내 생일인데도 아빤 생일축하 노래도 안불러줬어.
비올렛:어림없는 수작들 마슈.당신네 남정네들이 똘똘 뭉쳐서 덤벼도 난 내 일 외엔 손 하나 까딱 안할 테니까.
낸시:『난 다른 여자가 있어.당신과 헤어지고 싶어.』20년 결혼생활을 이렇게 끝내더군.난 문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어.
대체 내가 뭘 잘못했을까 하고.
메도우:이렇게 껴입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입고 다니는 것 같아서. 빌:여자를 숱하게 겪어봤지만 여자란 누워있을 때랑 뭔가퍼먹고 있을 때만 행복한 동물이란 말이지.
실험극장이 공연중인 『욕탕의 여인들』에서 등장하는 여섯명의 여인과 한명의 남자가 내뱉는 대사들이다.
이 작품은 사회에서 소외된 여섯명의 여인이 공중목욕탕에 모여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서로 여자로서 당하는 사회적 불이익에 대한 자각이 싹트면서 동지애로 뭉치는 과정을 그린 페미니즘 연극이다. 싸구려 술집의 무용수로 살아가는 조시,경관들에게 집단성폭행 당한 단,단의 어머니 메도우,이혼당한 낸시 등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하나같이 남성위주의 사회에 상처를 입은 여인들이다.욕탕은 이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마음껏 토로하 고 서로 위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어느날 시의회는 이 공중 목욕탕을 폐쇄하기로 결정한다.그 순간 여인들은 더이상 당하고만 있는 나약한 여자에서 떨쳐 일어나부당한 시의회 처사에 당당하게 맞서는,행동하는 여자로 새롭게 자각한다.
실험극장은 91년 이 작품을 초연,당시 페미니즘연극에 불을 댕기는 화제작으로 기록됐었다.모두 30대배우들로 구성된 여섯명의 여배우가 서로 경쟁하듯 열연한다.욕탕으로 몸을 던지는 마지막 장면이 이 복더위에 한줄기 소나기처럼 시원■을 준다.김철리연출,정경순.홍경연.서주희.이양숙.신현실.오지연등 출연.무기한.(515)7661.
李順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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