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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진보의길] ① 진보 정치의 몰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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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왼쪽으로 내려갔던 국회의 이념 저울추가 4년 만에 오른쪽으로 확 기울었다. 18대 총선 결과 보수 진영으로 분류되는 한나라당(153석)·자유선진당(18석)·친박연대(14석)·친한나라당 무소속(15석)의 의석을 합치면 개헌이 가능한 200석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진영은 민주당(81석)·민노당(5석)·친민주당 무소속(6석)을 다 합쳐도 92석에 불과해 보수 진영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는 진보진영(열린우리당+민노당)이 162석을 얻었고 보수진영(한나라당+자민련)은 125석에 그쳤던 17대 총선의 결과를 거꾸로 뒤집은 것이다. 진보진영은 단순히 의석 수가 준 것뿐 아니라 인적 구성에도 변화가 심했다.

17대 때 열린우리당 의원 가운데 386 세대로 분류됐던 의원 30여 명 중 이번 총선에서 생환한 사람은 송영길(인천 계양갑)·최재성(남양주갑)·조정식(시흥을)·서갑원(순천) 의원 등 10명 미만이다. 17대 국회에서 한 자리에 모였던 이인영·오영식·임종석·우상호·유기홍·정봉주·우원식·윤호중 의원 등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낙선했다. 386 운동권 출신뿐 아니라 70년대 반독재 투쟁의 간판급 인사였던 김근태·유인태·한명숙 의원까지 고배를 마신 것은 진보진영의 세대교체를 의미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 81명의 당선자 가운데 70, 80년대 운동권 출신은 10여 명에 불과해, 당의 이념적 색채에 상당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민주당보다 훨씬 뚜렷한 좌파 이념을 내세우는 ‘진보 정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민노당은 그나마 권영길(창원)·강기갑(사천) 의원이 지역구에서 당선됐고 비례대표를 포함해 5석을 건져 최악의 참사는 모면했다. 하지만 상당기간 당세 위축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대북 노선에 대한 견해 차로 민노당에서 떨어져나온 진보신당도 대표선수인 노회찬·심상정 전 의원이 모두 낙선해 원외 정당으로 전락했다.

경희대 김민전 교수는 “한국 사회의 보수화라고 해석하기보단 유권자들이 더 나은 대안을 선택한 것”이라며 “진보 세력이 민주화엔 크게 기여했지만 먹고 사는 문제엔 취약했고, 국민들보다 지나치게 앞서가는 면이 많았다”고 말했다.

다만 학계에선 이런 식의 급격한 좌향좌·우향우식의 쏠림 현상은 상호 견제와 균형을 무너트리기 때문에 썩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주의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진보 세력이 정치권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려면 현 진보 진영은 유권자들의 신뢰를 받는 대안 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10일 “국민들은 우리가 아직 충분히 변했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으로서 충분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고, 피부에 닿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신뢰를 주는 데 실패했다”고 자성했다.

2002년 대선, 2004년 총선을 거치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던 보수진영이 자기 혁신을 통해 지지를 되찾았던 과정을 진보 진영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김정하·선승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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